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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돈 부산시장이 23일 오전 부산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시장직 사퇴 의사를 밝힌 뒤 자리를 뜨고 있다. 연합뉴스

오거돈 부산시장이 23일 여성공무원과 면담하다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했다고 밝히며 전격 사퇴했다. 2년 전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수행비서에게 가한 성범죄로 사임한 후 광역 지자체 단체장 중 두번째 ‘미투’로 인한 불명예 퇴진이다. 안 전 지사의 충격적인 사건에서 무엇을 배운 것인지 참으로 개탄스럽다. 

오 시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한 사람에게 5분간 면담 속에서 불필요한 신체접촉이 있었다. 저의 행동은 경중에 상관없이 어떤 말로도 용서받지 못할 행위임을 안다”며 피해자와 시민에게 사죄했다. 그러나 피해자는 오 시장의 기자회견문에 유감을 표명했다. 피해자는 “(오 시장의 행동은) 명백한 성추행이자 법적 처벌을 받는 성범죄였는데도 ‘강제추행으로 인정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거나 ‘경중에 관계없이’ 등의 표현으로 오해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오 시장의 행동은 권력관계에 의한 성폭력의 전형으로, 명백한 성범죄다. 안 전 지사 사건은 유력 정치지도자 중 첫번째 ‘미투’ 사례로 충격을 줬지만, 이번 사태는 또 다른 점에서 참담하다. 미투 운동 이후 분노하는 여성들의 외침에도 사회지도층은 이를 귓등으로 흘리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오 시장은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성희롱·성폭력 전담팀 신설을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당선 후 말을 뒤집었다. 또 회식자리에서 여성노동자들을 양옆에 앉히는 등 너무나도 무딘 성인지 감수성을 드러냈다. 오 시장은 피해자가 성폭력상담소에 피해를 알리자 주변 사람을 동원해 회유 시도까지 한 것으로 전해진다. 성폭력은 개인의 자존감을 송두리째 짓밟는 중대범죄다. 사퇴가 끝이 아니다. 사건을 철저히 수사해 전모를 밝히고 처벌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이를 정쟁에 이용하려는 시도는 결코 용납되어선 안된다. 

서지현 검사가 2018년 1월 성추행을 폭로하며 미투 운동을 촉발한 이후 한국 사회는 성폭력 대응에 큰 변화를 겪고 있다. 그동안 숨죽인 채 가슴앓이해오던 성폭력 피해자들의 외침이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성폭력부터 불관용으로 대처해야 한다. 당연히 용납되는 것처럼 여겨져온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끊어내지 않고는 진전은 없다. 피해자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피해사실을 고발해야 하는 낡은 틀도 해체, 제도적인 해결책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이것만이 성폭력 피해를 근절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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