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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덜컹. 차가 돌부리에 걸리거나 푹 꺼진 땅을 지나며 흔들릴 때 쓰는 말이다. 넉 달이 갓 넘은 문재인 정부에서의 세상살이를 두고 전화 너머로 친구와 공감한 단어는 ‘덜컹’이었다. 북녘의 6차 핵실험, 남녘과 중국에서의 사드 후폭풍, 김이수·박성진 후보자의 인사 파동…. 맏이가 교대 다니고 막내가 중3인 친구는 여러 얘기 끝에 여름 내내 꽤 속 끓인 듯 교육 얘기를 더했다. 통제선을 넘은 ‘북풍’이 있고, 보수 3당의 ‘완력’이 보이고, 정부가 자초한 ‘화(禍)’가 섞여 있다. 친구의 넋두리처럼, “잠시 세상사는 숨통이 틔었다가 다시 숨이 막혀오는 나라 꼴”이다.

억울할 것이다. 정책 집행자 눈에는 도처에 먼지를 두껍게 쓰고 있는 난제들이 적폐일 게다. 손대려니 공매 맞는 걸 피할 길도 없다. 초등교사 수급만 해도 4년 전 교육부 연구용역에서 이미 교사 수가 정원을 1만명 웃돌고, 갈수록 더 심각해질 거라는 내부 경고가 있었음이 드러났다. 그 시한폭탄을 묻어두고, 박근혜 정부는 청년들의 파트타임 노동(기간제 교사·강사)을 늘릴 시험터로 학교를 택했다. 그 후과가 지금 3만5000명 웃돌고, 2024년 7만5000명에 달할 거라는 ‘잉여 교사’의 수렁이다. 8월 한 달을 시끄럽게 달구다 1년 유예한 수능개편 작업도 2013년 융·복합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백년지대계로 시작됐다. 문·이과 통합과 수능 절대평가의 설익은 그림을 담아보려다 퇴짜 판정을 받은 격이다. 그 무섭다는 중2들만 자극하고 “4년간 뭐하다 이제 와서….” 소리가 교육부를 몰아친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억울함은 거기까지다. 상처를 덧내고 매를 버는 일이 줄 잇고 있다. 살충제 계란의 엉성한 관리가 옛 정부의 적폐라면, 혼란과 화를 돋운 사람은 따로 있다. 닷새 후 들통 날 거짓말을 하고 업무 파악도 못해 버벅댄 식약처장이다. 성주 땅에는 대통령이 약속한 국회 비준이나 환경영향평가도 없이, 과연 효용이 있는지 ‘과학의 언어’를 얹지 못한 채 사드 불씨가 밤새 터를 잡았다. 돌이켜 보건대, 교육현장에서 30%밖에 수긍 못할 수능개편안은 새 부대에 담을 술이 못되면 애초 출시를 늦췄어야 했다. “양자택일하라”며 강매한 교육부는 오만·불통의 관료 속성 그대로다.

누적된 교사 과잉 폭탄을 올해 임용고시생에게 던지려 한 ‘행정폭력’도 조급함의 발로다. 교사 연수·파견·휴직을 늘려 임용 숨통만 터보려는 몸짓은 아랫돌로 윗돌 괴기다. 제3자 눈엔 답이 보인다. 적폐를 풀겠다는 정부라면, 처음부터 교사 수와 교대생 기득권을 같이 낮추는 긴 일정표를 내놓고 사회적 대화를 시작했어야 했다. 그것이 혁명이나 행정 독재보다 개혁이 어려운 이유일 게다.

적폐는 쌓인 두께와 시간이 여러 갈래다. 어깨 힘을 뺀 검찰·국정원·감사원·국방부·방통위가 몸소 저지른 악의 뿌리를 당기고 있다. 블랙리스트·댓글·공영방송·4대강에선 ‘검은 팩트’가 쏟아지고, 교육부는 국정교과서 백서를 쓰고 있다. 청와대 뒷산에서 ‘쇠고기 촛불’을 내려다보며 곱씹었을 MB의 반격과 박근혜 정부의 민주주의 탄압사를 기록하는 장정이다. 해도, 역사는 앞으로만 가지 않는다. 어찌보면, 박수 받는 쉬운 적폐부터 손대기 시작한 격이다. 시끄럽고 난항인 것은 정작 이해와 생각이 엇갈리는 생활·안보 이슈다. 4대강 끝에는 담수와 바닷물이 격하게 부딪치고 섞이는 기수역(汽水域)이 있다. 그 못잖게 추석 연휴 뒤에 ‘과거 9년’과 ‘새 정부 5개월’이 충돌할 국정감사에선 그 밀당이 정점으로 치달을 게다. 길싸움은 이제부터다. 진흙탕 싸움을 불사하는 야당이 있고, 수레바퀴처럼 도는 이슈가 있고, 저마다 눈높이가 다른 민심은 늘 변덕을 품고 있다.

 닻 올리고 128일, 문재인 정부에도 어김없이 호루라기는 울렸다. 저항 세력이 돌출하고, 개혁 피로감이 움트고, 국정지지율은 70 언저리에서 ‘떨리며 내리막’이다. 이맘때, 구중심처에선 호미로 막고 가자는 사람, 물러서면 대통령 힘 빠진다는 사람이 섞인다. 정도는 음수사원(飮水思源)이다. 문재인 정부의 그것은 “이게 나라냐”고 묻던 촛불이다. 겸손한 권력, 찾아가는 정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 문 대통령 취임사에 담긴 키워드이고, 그날 임명된 임종석 비서실장의 일성은 “예스맨이 되지 않겠다”였다. 초심은 유지되고 있는가. ‘3철’을 배제했던 인사 감동이 역사에 무지한 ‘생활보수 소시민’을 국무회의에 앉히는 인사로 저물 것인가. 5·18과 가습기 살균제의 멍울을 풀어준 대통령이 성주 소성리는 외면할 것인가. 생리대·계란·수능개편·박성진 파동으로 이어진 과오는 여름날로 끊을 수 있나. 힘 빠지고 아픈 것은 자살골이다. 운신을 옥죄는 적폐는 억울할 게다. 하나, 그 위에 덧난 상처는 현재의 몫이다. 위정자들이 기대는 “억울한 과거”,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이기수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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