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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초안’을 발표한 지난 7일, 고용노동부에서 낸 보도참고자료를 찬찬히 읽었다. 1988년 최저임금제가 도입된 이후 처음 시도하는 개편이라서 낯선 용어들이 많았다. 보도자료를 읽으면서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노동자’가 보이지 않았다. ‘노동자’라는 용어가 들어갈 자리는 모두 ‘근로자’가 차지했다. 헤아려보니, 11쪽 자료에서 ‘근로자’는 18번 언급됐다. ‘노동자’는 일본의 최저임금 제도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단 1번 나왔다. ‘노동자’는 일본에만 있고 한국에는 없었다. 이뿐 아니다. 지난달 24일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에 대한 보도자료(총 19쪽)에서도 ‘근로자’는 16번 언급된 반면, ‘노동자’는 5번에 그쳤다.

지난해 9월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취임한 이후 노동부의 보도자료 등 문건에서 ‘노동자’ 대신 ‘근로자’라는 용어가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다. 보도자료뿐 아니라 이 장관의 발언이나 언론 인터뷰 등에서도 ‘노동자’보다 ‘근로자’가 더 자주 보인다. 노동부 관계자는 “법적 용어로 쓸 때는 근로자로 표기하지만, 나머지는 혼용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보도자료에서 보이듯 ‘근로자’가 법적 용어로만 쓰이는 건 아니다. 일상적 표현에도 ‘근로자’를 쓴다. 노동조합이나 노동위원회에서 보듯 ‘노동’이 법률용어로 쓰이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7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 초안을 발표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모든 용어나 개념에는 가치가 들어 있다. 단어 하나하나가 정치적이다. 근로자(勤勞者)는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근로자’에는 부지런히 일해 주기를 바라는 자본가나 사용자의 가치관이 들어 있다.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19세기 독일에서는 현금을 지불해 타인에게 노동력을 제공하도록 하는 사람을 노동수여자(Arbeitgeber), 임금을 대가로 자신의 노동을 빼앗기는 사람을 노동수취자(Arbeitnehmer)로 불렀다. 그러나 카를 마르크스는 이들 용어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여겨 <자본>을 저술하면서 각각 자본가(Kapitalist)와 노동자(Arbeiter)로 고쳐 썼다. ‘노동자’라는 개념은 여기에서 유래했다.

학문적으로 말하면 사용자의 가치를 부여한 ‘근로’보다는 좀 더 가치중립적인 ‘노동’이 옳은 개념이다. 당연히 근로자가 아니라 노동자로 써야 맞다. 노동자가 생계를 위해 노동력을 판다. 노동의 대가만큼 정당하게 임금을 받으면 된다. 노동자는 사용주나 국가를 위해 ‘부지런히 일하는’ 자가 아니다. 그러나 정치권력이나 자본가는 어휘나 개념을 바꾸거나 조작하여 자신들의 가치를 부여해왔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전시체제에서 노동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근로정신대’를 조직했다. ‘솔선수범해 전장에 나가 노역하는 부대’라는 뜻이다. 노동을 강제하고픈 욕망이 투여된 ‘근로’는 해방 후에도 이어졌다. ‘근로자의날’ ‘근로복지공단’ ‘근로계약서’ 등이 그것이다. 심지어 현행 대한민국 헌법조차 국민 기본권을 기술하면서 ‘근로의 권리’ ‘근로자’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용어와 개념은 역사성을 지닌다. 일제와 군부독재 시대의 ‘근로’ ‘근로자’가 사회 민주화와 함께 ‘노동’ ‘노동자’로 바뀌고 있다. ‘근로자의날’은 ‘노동절’이 되었다. ‘근로계약서’는 ‘노동계약서’로 바뀌고 있다. 1981년에는 정부부처에 노동부가 신설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동존중’을 국정철학으로 내걸었다. 문재인 정부의 초대 고용노동부 장관인 김영주 전 장관이 재임기간 내내 ‘근로자’ 대신 ‘노동자’라고 표현한 것은 ‘노동 존중’의 징표처럼 여겨졌다. 비록 개헌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지난해 초 문 대통령은 ‘근로자’를 ‘노동자’로 바꾸고 노동권을 크게 강화한 조항을 포함시킨 개헌 초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초 고용노동부에 “노동의 관점에서 노동자의 이익,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대변해 달라”고 주문했다. 노동 관계 업무를 담당하는 노동부는 주문에 앞서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런데 이재갑 장관 취임 이후 노동 정책은 급격히 과거로 회귀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호해야 할 노동부 장관이 먼저 탄력근로제 연장을 들먹이고 최저임금 속도조절을 위한 최저임금제 개편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행보가 노동부 문건에서 ‘노동자’가 실종된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면 지나친 예단일까. 고용노동부도 경제부처인 만큼 고용 하락이나 생활물가 상승 등 경기 침체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그렇다고 경제를 내세워 ‘노동’을 희생시켜서는 안된다. 첫 조치는 ‘노동자’라는 이름을 복권시키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국회는 노동관계법상의 ‘근로’ 표현을 ‘노동’으로 바꾸는 개정 작업에 나서야 한다. ‘노동 존중’은 정명(正名)에서 나온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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