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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의 그림마당]2020년 2월 28일 (출처:경향신문DB)

“야야, 여기는 엉망이다.” 엊그제 경상북도에 있는 고향집 인근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또 발생했다길래 통화한 어머니의 첫마디다. 주변 식당들이 문을 닫았고, 웬만해선 밖에 잘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동네 분위기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어머니는 통화를 끝낼 즈음 “마스크는 꼭 쓰고 다녀라”라고 신신당부했다.

출퇴근길 지하철과 버스 안에서 열에 아홉은 마스크를 쓰고 있다. 경향신문 편집국 회의 때도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얼굴을 반쯤 가리고 얘기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코로나19 확진자와 2m 내에서 접촉한 사람을 ‘접촉자’로 분류한다. 마스크는 그 거리를 좁히는 방법이다. 불편하지만 자신을 보호하고, 주변 사람을 배려하기 위한 기본적 예방수칙임을 이해한다.

감염병 위기 경보가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상향됐지만 국가 방역체계의 부족함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마스크를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고, 무엇보다 의료현장에서 장비와 인력이 달린다. 코로나19 퇴치에 특화된 백신은 아직 없다. 코로나19의 기세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 대통령은 이번주가 확진자 증가세가 꺾이는 변곡점이 돼야 한다고, 국무총리는 4주 내 대구를 안정적 상황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상생활에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집집마다 학교 개학이 일주일 늦춰졌다고 좋아하던 아이들은 다니던 학원이 문을 닫고 놀이터에도 나가지 못하는 날들이 계속되자 힘들어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종교행사 축소, 재택근무 확대, 회식 자제 등 ‘거리 두기’로 장기전을 각오하고 있다. 대구와 서울이 따로 없고, 정부와 국민이 따로 없다.

국민 행복과 안전은 정부의 궁극적 목적이다. 위기 상황에서 국민 불안감을 덜어주고, 함께하고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집권여당 대변인의 “대구·경북 봉쇄” 표현이나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의 “가장 큰 원인은 중국에서 들어온 우리 한국인” 언급은 국민 마음을 헤아리는 공감 능력과 세심함이 부족함을 보여준다.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때와 달리 적극적인 정보 공개로 투명성을 높인 것을 해외 언론이 긍정 평가하고 있지만 정부가 호들갑 떨 일은 아니다. 코로나19는 신종플루와 비교해도 확산 속도가 빠르다. 확진자 증가 추세도 가파르다.

정부의 초기 대응을 두고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중국인 전면 입국 금지’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애초에 중국 국적자, 중국에서 들어오는 모든 외국인을 막았더라면 한 달 만에 확진자가 1700명을 넘는 급속한 확산을 피할 수 있었을까. 정부는 중국인 전면 입국 금지를 실효성 있는 대책이라고 판단하지 않았다. 의학계 내에서도 입장이 갈린다. 코로나19의 발원지가 중국 우한이지만, 한국에서 감염이 확인된 중국 국적 확진자는 초기 단계에서 나왔고 무게중심은 대구로, 신천지 교회로 이동한 상태라는 것이다. 정부가 지역사회 감염이 방역의 최우선 과제가 됐다고 보고, 신천지 교인 전수조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배경이다. 그럼에도 ‘중국인 전면 입국 금지’ 요구가 끊이지 않자, 27일 청와대 대변인이 나서 5가지 이유를 설명했다.

보수야당이 중국인 입국을 막지 못하는 것은 중국 눈치보기와 사대 굴종 때문이고, 그 결과 방역에 총체적으로 실패하고 있다고 몰아세우는 식은 과도하다. “숙주는 박쥐가 아니라 바로 문재인 정권과 그 밑에 있는 여러분들”(미래통합당 정갑윤 의원)이라는 식의 자극적 언사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특히 총선을 앞두고 코로나19를 계기 삼아 ‘기-승-전-문재인 정부 비판’이라는 정치적 의도가 작용하는 것이라면 경계해야 한다. 중국의 태도에 감정적으로 대응할 필요도 없다. 코로나19 사태가 한풀 꺾였다고 한국의 대응에 훈수를 두는 중국 매체 보도는 한국을 배려하는 자세가 아니다. 중국의 여러 성(省)에서 잇따르는 한국인 입국 제한 조치에 중국인 봉쇄로 맞대응하는 것이 코로나19 종식의 해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보건 관련 국제기구들은 감염병 극복을 위해선 봉쇄가 아닌 국제적 연대가 요구된다고 조언한다. 분명한 건, 이 사태는 우리가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은 “정부를 비판할 때 하더라도 지금은 좀 참아달라. 장수의 투구를 벗기지 말아달라”고 했다. 정부 대응에 대한 종합적 평가는 코로나19 사태를 진정시킨 후에 해도 된다. 그때는 철저하게 해야 한다.

<안홍욱 정치·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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