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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한일협정과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는 많은 면에서 닮아 있다. 50년의 시차를 둔 이들 외교 행위는 지금 한·일관계 암운의 출발점이다. ‘박정희·박근혜 부녀’의 정치적 부정(不正)을 흠잡고자 함이 아니다. 판박이처럼 닮은 내용의 ‘불구성(不具性)’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크게 3가지다. 피해 당사자(강제동원 피해자, 일본군 위안부)를 배제한 국가의 폭력성, 주권자인 국민 의사에 반한 비정상 통치행위, 그리고 소위 ‘불가역적 종결’이라는 논쟁성이다. 이들 합의는 개인의 권리를 소멸해버린 국가의 전횡과 한 정권의 선택이 국가에 어떤 위기를 드리우는지 보여준다. ‘역사 파산’을 선언한 일본은 이를 근거로 ‘약속을 지키지 않는 한국’을 만들어 냈다. ‘사죄하지 않는 일본’에 대한 환장할 역공 프레임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청와대에서 열린 ‘정당 대표 초청 대화’에서 여야 5당 대표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여야 대표와 청와대에서 회동하는 것은 1년4개월 만이다. 왼쪽부터 정의당 심상정·바른미래당 손학규·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문 대통령, 자유한국당 황교안·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 청와대사진기자단


국제외교 질서상 전면 부정은 아니라도 과거 정부의 그늘을 조금이라도 걷어내려는 한국민의 변화와 성장을 일본 정치가 이해하기 힘들 수 있다. 민주주의 국가치곤 예외라 할 만큼 정권교체가 드문 게 그들 정치문화다. 시민이 정치적 성취를 이루고, 그 시민의 의지를 권력이 존중하는 문화가 그들에겐 낯설다. 그래서 문재인 정권 이후 더욱 힘을 받는 이들 변화가 못마땅할 것이다. 지난 반세기 한·일을 지탱해준 ‘정·경 분리’ 원칙을 깬 수출금지 조치가 한국 정치를 흔들려는 망상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 이유다. 과거 그들을 몰락으로 이끈 침략적 망상과 다르지 않다.


‘일본은 친구인가, 아니면 적인가.’


두 나라 국민들은 이제 불편한 질문 앞에 서게 됐다. 지정학적 위치와 과거 역사가 지운 숙명이다. 21세기 국가적 무력의 한 수단이 경제적 강제임을 생각하면 한·일은 지금 전쟁 전야나 마찬가지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일본의 대(對) 한국 수출규제와 관련한 발언을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일본의 무역보복을 두고 “여러 차례 전 국민의 단합된 힘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했듯이 이번에도 어려움을 이겨낼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남 기자


한·일의 충돌로 새삼 애국적 열정들이 가슴속으로 들어왔을 터다. 그러나 1세기 전 ‘인간의 암흑’을 만든 것과 같은 배타적 열정이어선 안된다. 시민들의 자생적인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둘러싼 논쟁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불매운동을 단순히 ‘애국적 열정의 반작용’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지난 세기 한국민들의 성취와 의식 성장이 배경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조치를 정치·경제적 성장에 대한 위협과 도전으로 느끼고, 다시 힘으로 누르려는 일본에 격렬한 분노를 표현한 것이다. 애국적 열정 이전에 시민 개개인의 고양된 자존감이 동인(動因)이다.


정치는 매우 어려운 과제를 받아들었다. 대외적으로 과거가 남긴 외교적 부채를 국제질서 틀에서 해소하면서도, 지금 주권자들의 자존심을 지켜내야 하는 이중적 과제다. 그 방향은 ‘평화·공존’의 원칙과 ‘냉정한 현실주의’의 접근법의 두 가지다. 이 궤도에서의 이탈은 두 나라 국민들의 고통을 의미한다.


친구일 수도, 적일 수도 있다면 그들은 중요한 ‘평화 관리’ 대상이다. 북한이 가장 중요한 평화 관리의 목표인 것처럼 말이다. 이를 위해선 그간 우리를 옭아매온 친일·반일의 이분법은 무용하다. 호혜의 노력과 냉정하게 경계하는 준비가 함께 요구될 뿐이다.


보수는 유효성이 다한 ‘우방·동맹’론에서 벗어나야 하며, 진보는 과거에 기댄 적의만을 일본 앞자리에 둬선 안된다. 특히 내부의 갈등이 일본으로 하여금 우리 정치에 간여하려는 유혹이 돼서는 평화적 공존은 없다. 일부 보수 정치인과 언론을 왜곡 인용한 일본 극우매체들의 ‘가짜 뉴스’ 공격은 한·일의 시계가 1세기 전에 멈춘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토착왜구’ 같은 논란이 이어지고, 이를 정치적 편가름 소재로 삼는 무지는 그들 눈에 가장 취약한 공격 포인트로 보일 것이다.


동시에 일본을 ‘애써 무시’하려는 정신 승리만으론 경쟁할 수 없다. 지난 시기처럼 일본 앞에서 과도하게 흥분하든, 주눅이 들든 모두 동일한 패배의식일 뿐이다.


한·일이 보다 성숙한 민주국가로 진전하려면 구성원들로 하여금 집단의식을 표출토록 하는 상황은 옳지 않다. 역사적으로 얽힌 국가들일수록 더욱 그렇다. 현 시기 한·일 정부는 그 점에서 외교적 실패 지적을 피할 수 없다. 불매운동 등 애국적 열정이 정부의 외교적 안일이나 미숙을 가리는 장막이 돼서는 안된다. 강제징용공 문제는 공론화된 이후 문재인 정부까지 몇 개 정부에 걸친 일이다.


그동안 모든 한·일전은 유혈 없는 전쟁이라 할 만큼 양국 국민들 감성을 고조시켰다. 하지만 친구 편에 두면서도, 적의의 감정으로 마주 달린 지난 시기는 유효하지 않다. ‘애써 무시’하는 게 아닌 경쟁자에게 ‘냉정한 존중’으로 맞서야 한다. 일본 조치로 드러난 취약점을 조용히, 빠르게 교정하며 강력한 ‘한 방’을 준비하는 치밀함이 필요하다. 그것이 ‘성장하는 한국과 경쟁하는 한·일’이라는 진짜 ‘불가역적 상황’에 대처하는 길이다.


<김광호 정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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