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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장기, 어쩌면 세계 최장기였을지 모를 콜텍 노사분규가 4464일 만에 타결되었다. 2007년 ‘비용절감’을 이유로 시행한 정리해고에 맞선 지 무려 13년 만의 일이다. 이제는 복직해도 어느새 정년인 세월이 흘렀다. 이대로 모든 것이 잘 끝난 것일까. 타결 소식을 접한 직후 내 머릿속에 떠오른 사람들이 있었다. 콜텍과 함께 복직투쟁을 벌여오던 콜트기타의 방종운 지회장을 비롯한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은 여전히 거리의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그들은 어째서 싸움을 멈추지 않는 것일까?

나는 방종운 지회장과 필자와 편집자라는 작은 인연을 맺은 바 있다. 2013년 ‘황해문화’ 창간 20주년 기념호에 그동안 살아온 삶의 내력을 써달라는 청탁을 했었다. 1958년 베이비붐 세대인 그의 삶은 평범하다면 평범한 것이지만, 우리 현대사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다. 서울 미아리에서 살던 그는 도시개발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지만, 대를 위해 소가 희생해야 한다고 여길 만큼 대단한(?) 애국자였다. 

집을 잃고 떠돌던 그가 선택한 대안은 직업군인이 되는 것이었다. 1978년 공수부대 하사관으로 군복무를 시작한 이듬해 박정희 대통령이 죽었고, 1980년 ‘서울의 봄’이 있었다. 

콜텍 노사 조인식이 열린 23일 오전 서울 강서구 콜텍 본사 앞에서 이인근 금속노조 콜텍 지회장(오른쪽부터)과 전날까지 42일간 단식한 임재춘 조합원, 올해 60세로 정년을 맞이하는 김경봉 조합원이 마지막 기자회견을 끝내고 꽃다발을 들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방종운은 데모하는 학생들을 진압하며 “부모가 피땀 흘려 고생하여 대학에 보냈는데 공부나 열심히 해라”라고 말했고, 광주에 투입되었을 당시 5·18민주화운동은 “광주에 간첩들이 침투해 일어난 사건”이라고 굳게 믿었다. 1983년 제대 이후 그는 대우자동차에 입사했고, 연애 끝에 결혼도 했다. 가족과 가정을 일구며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던 그는 성당에 다니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노동조합에 가입해 활동하다가 해고되었다. 그가 경험한 첫 번째 해고였다. 

1987년 6월항쟁을 거리에서 맞았던 그는 생계가 어려웠기 때문에 같은 해 8월 콜트악기에 입사한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콜트악기에도 노조 설립 움직임이 일자 회사는 노동조합을 허용하지 않는 조건으로 임금 5만원 인상, 자녀 학자금 지급이라는 복지 조건을 내걸었다. 이때부터 콜트악기는 경영이 어렵다며 회사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고 엄포를 놓았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콜트악기는 창사 이래 최대 흑자인 29억8500만원의 흑자를 냈다. 노동자들은 노조를 설립했고, 회사는 ‘콜텍’이라는 새로운 법인을 만들어 어쿠스틱 기타와 전자 사업부를 이전시켰다. 

이 무렵 현대중공업 식칼테러로 악명을 떨친 제임스 리가 노무 이사로 입사했다. 콜트악기는 2007년 4월부터 부평공장 생산직 노동자 56명을 정리해고했고, 2008년엔 아예 공장을 폐업해 나머지 125명의 노동자가 직장을 잃었다. 사측은 경영조건 악화를 내걸었지만, 1992년부터 2005년까지 꾸준히 순이익을 올리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해고 무효를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고, 2009년 고등법원은 콜트와 콜텍 노동자 해고는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2012년 대법원은 콜텍의 정리해고 위법성을 인정한 고법 판결을 파기 환송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위기에 대비하기 위한 기업의 정리해고도 합법이란 것이었다. 

정권이 교체되고 2018년 5월23일 대법원 특별조사단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거래 의혹리스트를 발표했다. 대법원장의 재판거래 리스트에는 콜트콜텍 소송도 포함되어 있었다. 방종운 지회장이 대법원 앞에서 노숙 농성을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그가 자신이 살아온 삶을 정리해 보낸 원고의 마지막엔 “나아지지 않는 삶이지만/ 인간다운 삶을 찾아서/ 걷는 길”이라는 말로 시작되는 시 한 편이 적혀 있었다. 이들이 고통스럽게 버틴 13년은 국가와 사회가 그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포기하라고 강요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정권이 세 번 바뀌는 동안 그들은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것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나아지지 않는 삶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 마음, 인간다운 삶을 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우리 사회가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다운 삶을 포기하지 않은 이들 덕분이다.

<전성원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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