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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오래전부터 ‘범죄자는 일반인과 다르다’는 착각 속에 살아왔다.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동생을 살해한 뒤 쫓겨난 ‘카인의 후예’들이나 악마에게 영혼을 사로잡힌 마녀나 이교도들이 범죄를 저지른다고 믿고 종교재판을 열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워 처형했다. 19세기 범죄학자 롬브로조는 ‘격세유전으로 원시인의 특성을 타고 태어난 자들’이 범죄자들이며 외모부터 일반인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반면 그의 제자 가로팔로는 ‘외모가 아닌 심리적 돌연변이’들이 범죄자인데 이들은 유색인종과 집시 등 ‘열등한 집단이나 민족’에게서 많이 발견된다고 주장했다. 무솔리니와 히틀러 등이 자행한 끔찍한 인종학살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것이다.

이후 현대과학은 이런 통념들이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범죄자들의 조상과 가계를 조사하고, 호르몬과 성염색체, 쌍둥이와 입양아를 대상으로 한 수많은 연구들이 내린 결론은 ‘범죄자가 일반인과 다르다는 과학적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유영철이나 정남규, 강호순 등 연쇄살인범 중에서 그의 부모나 조부모가 살인범이었던 사례는 발견되지 않았다. 반면에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 재벌, 대학교수나 의사, 법조인 등 높은 신분이나 ‘고결한 외형’을 갖춘 자들 중에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일들이 왕왕 발생한다. 빌렘 봉거는 사회 상층부에 있는 자들이 오히려 ‘도덕·윤리적으로 타락’할 가능성이 높고 ‘범죄를 저지를 기회와 시간, 능력’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들이 가진 권력과 돈, 그리고 신분이 낮고 가난한 자들을 주 대상으로 삼는 편향된 사법제도 때문에 이들 ‘사회 상층부 범죄자’들은 쉽게 적발되지 않거나, 적발되더라도 법망을 빠져나가 범죄통계에는 잘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MBC 시사교양 프로그램 <프로파일링> (출처 : 경향DB)


1990년대 뉴욕 시경(NYPD)의 ‘무관용 원칙’의 성공이후 미국 경찰에 유행처럼 번졌던 현상이 ‘인종적 프로파일링(Racial Profiling)’이었다. 즉 범죄통계를 보니 가장 많은 강력범죄를 저지른 자들이 10~30대 유색인종 남성이라는 점에 착안, 이들에 대한 검문검색을 강화해 ‘예비적인 단속’을 하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이러한 ‘인종적 프로파일링’은 경찰의 검문에 불응한 흑인 청년이 거리에서 경찰의 총격을 받고 사망하거나 경찰봉이나 손전등으로 구타당하는 비극으로 이어지고 급기야 이에 반발하는 인종 폭동을 촉발했다. 결국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은 ‘인종적 프로파일링’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금지하는 ‘대통령령’을 제정해 공표했다. 이후 클린턴은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추문 사건에 대한 경찰과 특별검사의 수사를 받는 ‘모범’을 보였고, ‘세계 경제 대통령’이라 불리는 IMF 총재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역시 투숙 중이던 호텔의 여성 청소원을 성폭행하려 했다는 혐의로 경찰에 체포돼 성범죄자 전용 유치장에 구금된 채 재판을 받았다.

빈부나 사회적 신분과 상관없이 ‘누구나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현대과학의 상식과 ‘범죄 앞에 귀천이 없다’는 ‘법 앞의 평등’ 원칙이 지켜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마녀사냥’ 시대의 인습과 ‘사회적 프로파일링’이 통용된다. 범죄는 사회적 신분이 낮은 사람만 저지른다는 ‘제도적 착각’이 지배하고 있다. 검사와 검사를 지배하는 자들은 어떤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법망을 피하고 처벌에서 자유롭다. 윤창중, 김학의, 김수창, 그 외 수많은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들, 그들도 보통 시민, 서민과 다름없이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인격적, 상황적 특성과 조건 앞에 던져진 ‘사람’들이다. 혐의가 발견되거나 신고 혹은 고소·고발의 대상이 된다면, 철저한 수사와 엄정한 기소, 공평하고 공개된 재판을 받아야 한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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