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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2일 전남 순천에서 발견되었던 시신이 유병언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시신의 모계 DNA가 유병언의 친형 유병일의 모계 DNA와 일치해 ‘같은 어머니’를 두고 있음이 확인됐고, 추가 실시된 정밀 과학수사로 시신의 지문을 확보해 주민등록 데이터베이스에 보관 중인 유병언의 지문과 대조한 결과 역시 일치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아 있고 다양한 음모론이 번지고 있다. 그동안 수사당국이 여러 정치적 사건과 권력형 범죄들의 처리 과정에서 보여준 정직하지 못한 모습과 조작의 유산이 명백한 증거마저도 의심하게 만드는 ‘불신 사회’를 조장한 탓이다. 법과학적 증거의 수집과 분석, 대조 과정 등의 오류 가능성에 대한 ‘합리적 의심’이 아닌, 무분별한 의혹과 음모론 제기는 바람직하지 않다. 유병언이 핵심이 아니라, 세월호 침몰의 책임소재 규명과 처벌 및 배상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시신을 화장해 DNA 검사조차 불가능하게 한 조희팔과 달리, 얼마든지 제3의 전문가에 의한 검증이 가능한 유병언의 시신은 조작이나 음모의 가능성을 ‘제로’에 가까울 정도로 줄이고 있다.
22일 오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전남 순천시에서 사체로 발견됐다는 TV 뉴스를 보고 있다. _ 연합뉴스
그렇다면 남은 일은 무엇일까? 유병언 사망 논란으로 인해 세월호 침몰의 경영책임과 뇌물 및 청탁으로 얼룩진 정·관계 부패고리를 밝혀내는 작업이 중단되거나 늦춰져서는 안된다. 특히 누구에게도 이로울 리 없는 음모론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검찰과 경찰은 ‘진실’과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 관련 사실을 있는 그대로 숨김없이 내놓고, 실수나 잘못이 있었다면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아울러 유병언 일족으로부터 지원과 뇌물, 향응 등을 받은 정·관계 인사들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밝혀내 처벌해야 한다. 유병언이 수배와 수색의 대상이 된 주된 이유도, 그 자신의 개인적 범행 때문이 아니었다. 그를 중심으로 한 인적 연결고리가 대통령도 직접 언급한 ‘적폐’의 실체를 밝혀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유병언 추정 시신의 정확한 신원확인과는 별개로, 진상규명과 수사가 철저하고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만일 수사당국이 유병언의 사망을 핑계 삼아 ‘꼬리가 잘렸다’, ‘벽에 부딪혔다’는 등의 변명을 내어 놓는다면, 의혹과 음모론을 부추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전방 GOP 김훈 중위 사망사건, 허원근 일병 사망사건, 천안함 침몰, 국가기관 선거개입 등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사회적 갈등이 야기되고, 음모론이 난무한 반면, ‘진실’에 대한 사회적 동의와 수긍을 통한 ‘통합’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분명히 시신이나 선체 등 ‘물리적 증거’가 명확하게 남겨져 있어 ‘과학의 힘’으로 객관적인 사실을 드러내고, ‘분석’을 통해 진실을 추단해낼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우리 모두는 늘 패배해 왔다.
가장 큰 책임은 ‘나쁜 권력’이 져야 한다. 자신들의 이익, 눈앞의 승리를 위해 수사기관과 사법기관 등 ‘진실의 보루’여야 할 기관과 기능들을 사적으로 운용하고 이용해 ‘불신의 습관’을 조장했기 때문이다. 그 다음 책임은 수사기관과 사법기관 스스로에 있다. 어떤 압력과 유혹 앞에서도 ‘오직 진실’만을 위해 중립성과 독립성을 지켜내려는 노력과 의지가 부족했다. 강자 앞에서 약하고, 안보나 정권의 안정 혹은 자신의 조직과 제 식구 지키기 등 ‘명분’이 있다면, 거짓과 조작과 은폐도 할 수 있다는 ‘의심’을 키워왔다. 덧붙여 시민들의 의심과 의혹을 먹이로 삼고 음모론을 생산해 이익이나 영향력을 지키고 확장해온 일부 사이비 전문가들과 정치몰이배들의 책임도 크다. 시민들은 이들 세 부류가 만들어 낸 ‘의심의 여지’와 이를 틈탄 ‘음모론’의 피해자들이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의 고질병을 고쳐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국회에서 난항을 겪고 있는 ‘세월호특별법’의 입법과 유병언 사망의 후속조치가 그 출발점이 돼야 한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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