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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원 | 범죄심리학자


 

4월1일부터 경찰청에서 1000명의 경찰관을 전담 배치해 인터넷상 음란물을 집중단속하고 있다. 아동과 청소년이 등장하거나 묘사된 음란한 영상, 그림, 게임, 애니메이션 등 모든 ‘표현물’이 단속대상이다. 제작 및 배포, 업로드뿐 아니라 단순 소지 및 다운로드 역시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된다. 문화 예술계와 게임 및 애니메이션 분야 종사자들과 업계는 단속을 피하기 위해 작품을 내리고 숨기고, 작업 중인 콘텐츠를 변경하느라 입이 한 줌씩 나와 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헌법상 ‘표현의 자유’ 위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반론도 있다. 지난해 8월 잠자는 여자 어린이를 이불에 싼 채 납치해 태풍이 몰아치는 강가에서 무자비하게 성폭행한 뒤 방치해 죽음 직전까지 내몰았던 나주 고종석 등 아동대상 성폭행범들 중 다수가 음란물, 특히 아동이 등장하는 음란물에 탐닉해 있었다는 사실이 그 배경이다.


2012년 한 해 동안 발생한 아동대상 성폭력 범죄도 8808건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증가 추세다. 음란물을 많이 본다고 반드시 성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지만, 성범죄 중 절대다수가 음란물에 탐닉해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고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이 청소년에게 미치는 악영향의 심각성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아프가니스탄이나 몰디브 등 우리보다 성을 더 감추고 억압하는 이슬람 문화권에서도 성범죄는 만연해 있는 반면, 음란물이 범람하는 일본에서 성범죄가 상대적으로 덜 발생하는 것도 사실이다. 혹자는 음성적으로 유통되는 음란물보다 심각한 해악을 끼치는 것이 언론과 인터넷을 도배하는 각종 성추문과 음란성 광고, 어린 연예인들의 지나친 노출 등 모든 사람들에게 반복적으로 제시되는 ‘사실적 표현물’이라고 주장한다.


박시후, 고위직 성접대 리스트, 연예인 성상납 스캔들, 독버섯처럼 번지는 성매매…. 요즘 언론과 술자리 대화는 온통 성, 성, 성이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언론 매체 간의 지나친 선정성 경쟁 탓도 있겠지만 우리 사회의 ‘성에 대한 이중적 태도’가 근본문제라고 할 수 있다. 겉으론 엄숙하고 순결한 모습 유지를 강요하고 뒤에서는 자극적인 성적 쾌락을 찾고 탐닉하는 이중적 태도와 심리를 미디어 산업이 놓칠 리 없기 때문이다.


입장 밝히는 박시후 (경향DB)


지나친 성적 엄숙주의를 벗고 ‘성적 표현’에 대한 개방과 허용의 정도를 높이되, 미성년자의 수위 높은 성적 표현물 접근을 실질적으로 차단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가정과 학교에서도 성을 금기시하지 말고 청소년을 대상으로 성에 대한 건강한 대화와 정보 제공을 해 줘야 한다. 아울러 ‘성을 소재로 한 예술 작품’과 ‘음란물’을 엄격하고 명확하게 구분하는 기준을 마련해 대중의 성 욕구와 호기심을 양성적으로 충족하고 해소해 주는 한편, 음성적 ‘음란물 산업’에 희생되고 착취당하는 사람, 특히 청소년이나 어린이가 결코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성적 표현물’이 헌법상 ‘표현의 자유’로 보호받기 위해서는 “예술적, 문학적, 정치적 혹은 과학적 가치를 가져야 하며 사회상규에 어긋나는 성적 공격성이나 폭력성을 띠지 않아야 하고, 전체적으로 병적이거나 성적 수치심을 자극하는 것으로 인식되어서는 안된다”. 물론 주관성과 추상성을 포함한 개념이고, 그 판단에는 고도의 전문성과 사회적 합의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다. 아울러 ‘음란물’로 판정되는 표현물에 대해서도 범죄적 ‘폭력성, 가학성, 착취, 강요’ 등의 문제가 발견되지 않는다면 엄격한 관람이나 시청 가능 연령 제한을 전제로 양성화하는 방안 역시 공개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성’과 관련해 가장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는 ‘강요, 착취, 폭력, 인격의 상품화’ 문제다. 그 중심에는 권력을 가진 자들이 ‘성’을 뇌물이나 유흥 행위로 이용하며 취약한 상황에 처한 개인들을 단순한 도구와 수단으로 삼아 유린하는 사회적 구조와 관행이 있다. 이런 구조와 관행은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부와 권력의 상징이 타인의 성을 마음껏 착취하고 유린하는 것으로 묘사하면서 당연시되고 확대재생산된다. 부부간의 사랑과 가정의 의미는 그 앞에서 무력화되고 아이들은 음습하고 암울한 분위기속에서 정서가 왜곡된다. ‘성의 바다’에 빠진 대한민국, 응급구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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