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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첫 특별사면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제주 해군기지, 밀양 송전탑, 용산 화재참사, 사드 배치, 세월호 등 5가지 특정 집회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자들에 대한 특별사면 절차가 진행 중이다. 성탄절은 시기적으로 어렵지만 설날에는 가능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에 자유한국당은 ‘코드사면’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직업적 전문 시위꾼에 대해 특별사면을 추진한다면 법치가 무력화되고 국가 공권력이 해체되는 사태가 올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보수언론도 그들은 양심수가 아니라 국가보안법 위반자이자 폭력사범이라면서 원칙과 기준 없는 사면이 법치주의를 해친다는 취지의 사설을 쏟아내고 있다. 진보시민사회에서는 특정인을 거명하며 문재인 정부 첫 특별사면이 조속히 단행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 대상자는 적폐청산과 인권회복을 위한 양심수 전원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주의를 갈망했던 촛불광장의 뜻을 받들어 양심수 특별사면으로 적폐청산의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전 정부에서는 비리와 부패에 연루된 재벌회장, 정치인과 고위공직자들은 특별사면의 시혜를 받았는데, 정작 민주주의·인권과 평화·통일을 위해 헌신한 양심수들은 단 한 명도 사면을 받지 못했다며 촛불정부는 이전 정부와는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특별사면을 둘러싼 논쟁이 특별사면의 목적인 국민대통합은커녕 이념대립과 갈등만 부추기고 있는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가 사면정국을 돌파하고 첫 사면으로 정당한 사면의 좌표를 설정할 시험대에 서 있다. 특별사면의 대상과 범위 한정, 대법원의 의견을 듣는 절차 마련, 사면심사위원회 구성 다양화와 회의록 공개 등 사면법도 개정해야 한다.
사면의 원형은 ‘법에 앞서는 은사’로서 절대군주가 자신의 주관에 따라서 베풀었던 은전이나 시혜였다. 그렇다면 은사(恩赦)는 정의의 지주(支柱)인가 아니면 정의와 대립하는 것인가. ‘세상이 무너져도 정의는 세워져야 한다’며 정의를 확립하는 데 단호한 입장을 견지한 칸트에 의하면 은사는 정의에 반하는 것이다. 법치국가의 장애물로 보는 시각이다. 이에 반해서 은사는 법이나 정의보다 더 깊은 근원에서 나와 법이나 정의보다 더 높은 곳에 도달하는 가치 있는 것이라는 관점도 있다. 은사 없는 법은 불법이라는 입장이다. 이처럼 사면을 둘러싼 논쟁은 쟁점은 다르지만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과거 절대군주가 자신의 의향에 따라 베풀던 은전과 시혜로서 사면을 바라보게 되면 대통령이 재판의 절차와 결과를 뒤집어 사법을 지배하는 것으로 보게 된다. 이에 반해서 사면권자가 법 또는 법의 적용과정에 내재한 오류나 오류가능성을 교정하여 보다 완벽한 정의를 실현한다는 입장에 따르면 오늘날 민주적 법치국가에서도 유용한 법제도인 것이다. 더 이상 법치국가의 장애이자 군주국가시대의 유물이 아닌 것이다. 우리 헌법은 후자의 입장에서 사면을 법제도로 인정하고 있다. 헌법 제79조1항에 따라 대통령은 법률에 따라 사면·감형 또는 복권을 명할 수 있다.
이처럼 사면권은 사면법에 따라 행하는 국가원수의 헌법상 권한이며 통치행위다. 그러나 그동안 사면이 일반사면은 외면되고 특별사면에 치중하여 너무 자주 정치적 목적으로 행사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 침해를 제거해주는 법의 안전판이 아니라 마치 군주시대 국왕의 시혜처럼 여겨지기도 한다는 점에서 그 권한 남용이 문제되는 것이다. 이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대한 왜곡을 가져왔고 형사사법 정의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게 되었다. 사법 절차와 판결을 무시하고 통치행위라는 이름으로 베푸는 은사는 제왕적 권력으로 권력분립의 이념을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면은 절대적 예외상황에서 엄격한 한계 내에서 형벌면제를 위한 다른 법적 수단이 없을 때 보충적으로 행사되어야 한다. 그래야 법 앞의 평등원칙도 위배하지 않는다. 오판을 호소하는 사형수나 자신의 신념이나 사상을 어떤 폭력이나 무력에 호소하지 않고 표현한 혐의로 교도소에 갇힌 양심수에게 은사가 내려질 때 정당화된다. 그래야 사면권은 입법과 사법을 뛰어넘어 국가원수에게 인정된 고유권한이라는 점에서 법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법칙 없는 기적이 될 수 있다. 사면이 자의적으로 남발되면 기적으로 와 닿지도 않는다. 양심수나 정치적·종교적 확신범을 가두어 둠으로써 야기된 사회적 갈등을 해소시키는 기능도 한다. 과거의 아픈 기억을 지워버리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런 기능을 수행하는 사면권 행사여야 정의의 지주가 될 수 있다. 그래야 대통령의 은사는 법 밖의 세계에서 법의 영역 속으로 비춰 들어와 법의 세계의 추운 암흑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한 줄기 빛이 될 것이다.
<하태훈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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