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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명의 범죄자를 놓치는 한이 있어도,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을 처벌해서는 안된다’는 법언을 모르는 법률가는 없다. 민주국가의 시민이라면 사법체계의 근간을 이루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을 것이다. 수사와 기소의 책임이 있는 검사는 당연히 알고 지켜야 할 철칙이다. 초동수사를 담당하는 경찰에게 더욱더 요구되는 형사절차의 기본원칙이다. 사건을 빨리 해결해서 시민의 불안감을 잠재워주고 싶은 수사담당자가 혹시 범할지도 모를 과오를 막아주는 헌법상 장치다. 수사기관은 의심스러울 때에는 피의자와 피고인의 이익을 위해서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 법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동안 검찰은 수많은 사건에서 적법절차의 원칙을 지키지 않고 인권보장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여 무고한 피해자를 만드는 과오를 범하고 말았다. 적지 않은 재심 무죄사건들이 이를 증명한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역대 검찰총수로는 처음으로 “검찰이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일부 시국 사건 등에서 적법 절차 준수와 인권 보장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하며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과 ‘인혁당사건’,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잘못 처리된 사건의 수사기록도 검토를 거쳐 공개 범위를 전향적으로 확대하겠다고도 했다. 2008년 검찰 창립 60주년에도 꿈쩍하지 않았던 검찰이었다. 검찰총장의 입으로 공식 사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08년 이용훈 대법원장은 사법부 60주년 기념식에서 “사법부가 헌법상 책무를 충실히 완수하지 못함으로써 국민에게 실망과 고통을 드린 데 대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대국민 사과를 했지만, 검찰은 공식 사과를 유보한 채 유감을 표명하는 것으로 국민의 요구를 외면했었다.

새 정부의 첫 검찰총장은 검찰개혁이라는 국민적 요구에 직면하여 ‘투명한 검찰, 바른 검찰, 열린 검찰’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주요 사건에 대해서 수사의 중립성과 투명성을 기하기 위해 수사·기소 전반을 점검하는 ‘수사심의위원회’를 설치하고 검찰 공무원의 비리 감찰과 수사에 대해 외부의 점검을 받기로 하는 등 시민에 의한 검찰권 통제와 감시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다른 부처가 앞다퉈 개혁위원회를 꾸린 것처럼 검찰개혁위원회를 발족하겠다고 말했다. 셀프개혁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 방안을 제시했지만 검찰의 직접수사 필요성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에 대한 찬반이 있음을 근거로 내세우며 수사권 조정이나 공수처 설치와 같은 핵심적 검찰개혁 방안에 대해서는 미온적인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다.

검찰개혁은 법무부에 설치된 ‘법무·검찰개혁위원회’에 맡겨야 한다. 지금 검찰이 해야 할 검찰개혁의 출발은 과거사 정리다. 검찰은 그동안 밝혀진 재심 무죄사건에 대해 과오를 인정하고 과거사를 정리해야만 정의실현을 위한 진실발견의 한 축이자 인권수호기관임을 자임할 수 있게 된다. 검찰이 바닥 모르게 추락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오욕과 회한의 역사를 바로잡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한다. 그것이 검찰개혁의 시발점이다.

검찰개혁위원회를 꾸리는 것보다 시급한 것은 가깝게는 지난 보수정권, 멀게는 권위주의 독재정권에서의 과거사를 정리하는 것이다. 조직의 총수가 일회성으로 국민 앞에 머리 숙여 사과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된다. 과거사 정리와 적폐청산이 시대의 흐름이다. 촛불광장의 목소리다. 그저 과거 잘못을 이벤트성 대국민 사과로 퉁칠 일은 아니다. 진정 잘못을 인정한다면 과거사를 드러내고 정리해야 한다. 대국민 사과가 검찰을 향한 개혁드라이브를 피해보려는 꼼수여서는 안된다. 기존의 권한을 유지하는 선에서 끝낼 셀프개혁에 그쳐서도 안된다.

검찰은 검찰권 행사에 오류가 없었는지, 정치권력에 기대어 진실과 정의가 왜곡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사과할 일은 사과하고 책임질 일은 책임져야 국가공권력이 권위를 갖게 된다. 어두운 과거를 덮어두거나 이를 파헤치는 데 주저한다면 검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씻을 수 없을 것이다. 검찰이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스스로 과거를 반성하고 청산하는 길밖에 없다. 그래야 미래가 보인다. 지금이 명분도 있는 절호의 기회다. 국민적 요구를 받아 ‘정치검찰 역사’와의 단절을 선언하고 청와대가 아니라 국민을 바라보고 법률에 의해 보장된 검찰권을 행사할 것을 다짐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과거사 진실규명과 반성을 통해 무고한 피해자들의 명예도 회복시켜 주어야 한다. 국민으로부터 나온 검찰권을 국민을 위해 사용하는 국민의 검찰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하태훈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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