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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6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고등학교의 고교학점제를 실시하겠습니다. 교사가 수업을 개설하고 학생이 원하는 과목을 수강하는, 완전히 다른 교실이 열릴 것입니다.”(문재인 대통령 2017년 3월22일)

학점제가 시행되면 완전히 다른 교실이 열릴 수 있을까? 그렇다. 단 제대로 된 학점제여야 한다. 무늬만 학점제라면 어렵다. 그런데 제대로 된 학점제냐, 무늬만 학점제냐는 무엇으로 구별할 수 있나? 교사별(수업별) 평가제와 절대평가제의 시행 여부다.

교사별 평가제는 동일 과목이라도 교사마다 평가가 달라지는 제도다. 이게 시행돼야 수업의 다양성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진다. 지금처럼 교사가 달라도 시험이 동일해야 하면 교사들이 수업의 내용과 수준을 서로 일치시켜야 한다. 결국 수업이 획일화된다. 이래선 학생 선택권이 실질적 의미를 갖기 어렵다.

절대평가제는 일정 기준을 넘는 학생 모두가 A학점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학점제가 절대평가제와 결합하지 못하고 상대평가제와 결합하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학생의 과목선택에 심한 제약이 생긴다. 과목선택에 따른 성적 경쟁의 현저한 유불리 차이 때문이다. 상대평가 학점제에선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버리고 경쟁에 유리한 과목을 선택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다. 또 학교의 학점제 운영에도 상당한 제약이 생긴다. 적극적 학점제 운영이 오히려 학교의 입시성과를 나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상대평가제에서 학교의 수학 포기 학생들이 대대적으로 수학을 신청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수학 신청 학생의 성적이 그만큼 나빠진다. 결국 학교는 교육적 당위와 입시 현실 사이에서 계속 갈등을 겪게 된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학점제와 상대평가제는 최악의 조합이다. 이 조합은 자칫 교실을 지옥으로 만들 수 있다. 내신경쟁은 동료학생들 간의 경쟁이기에 특히 잔혹하다. 상대평가 학점제는 내신경쟁의 이런 잔혹성을 한층 더 강화한다. 학교에 작가를 꿈꾸는 20명의 학생이 존재한다고 하자. 학교가 문학창작수업을 개설해 주었다.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런데 지금처럼 1~9등급을 가리는 냉혹한 상대평가 경쟁을 이들 20명끼리 벌여야 한다면? 끔찍하지 않은가?

학교수업의 획기적 변화를 꾀하려면 교사별 평가제와 절대평가제는 더더욱 중요하다. 이 두 제도가 없으면 학점제가 수업의 변화로 이어지기 어렵다. 시험 때문이다. 어느 교사가 ‘윤동주와 이육사 시(詩)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논하시오’라는 완전 논술식 문제를 출제하려 한다하자. 가능할까? 어렵다. 함께 출제하는 교사가 그런 문제를 꺼리면 달리 방법이 없다. 해마다 다른 교사에게 매번 어떻게 동의를 얻겠는가? 동의를 해줘도 문제다. 상대평가제에서 이런 시험은 반드시 수많은 시비를 부른다. 제 아무리 훌륭한 교사라도 이런 시험을 보겠다고 마음먹기가 어렵다. 시험이 저차원적일 수밖에 없다면? 수업 또한 저차원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교육 선진국들은 어떤가? 교사별 평가제와 절대평가제가 상식이다.

제대로 된 학점제라야 완전히 다른 교실이 열린다. 그런데 이게 우리나라에선 쉬운 일이 아니다. 다른 무엇보다 입시 때문이다. 학점제는 입시제도로서의 효용성이 크게 뒤떨어지는 제도다. 필연적으로 학교시험의 입시변별력을 약화시킨다. 대학입시의 상당한 변화가 불가피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이기정 | 서울 미양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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