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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학기말에 있었던 일이다. 어쩌다 수업에 들어가지 않던 3학년 보강을 들어가게 되었다. 2년 전 가르치던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이 내가 반가웠는지 ‘선생님 제 이름 기억해요?’ 물으며 관심도 테스트를 하는데 생각나는 아이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아이도 있어 난처했다. 

나는 사람 이름을 잘 못 외운다. 학생들 이름도 잘 못 외운다. 한 반에 35명, 10개 반 수업을 들어가니 350명 이름을 외우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고 대다수 선생님들이 학생들 이름을 다 외우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라 그러려니 했다. 이것은 17년 전 내가 교단에 섰을 때 가졌던 생각이다.

그런데 최근 어느 교사 연수에서 수업 들어가는 100여명의 학생들 이름을 전부 다 외우는 선생님을 만났다. 그것도 3월이 가기 전에 다 외운다는 것이다. ‘학생 숫자가 적어서 가능한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곰곰이 따져보니 나도 맡은 학생이 180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한 달 안에는 힘들어도 두 달이면 가능할 텐데 나는 왜 그동안 이름을 외우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안 했지? 그동안 학급당 학생 수가 많이 줄었는데 나는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일주일에 한두 시간씩 수업 들어가면서 그 시간 동안 아이들 이름을 다 외우는 것은 무리다’라고 생각하며 지레 포기했던 것이다. 무려 17년 동안이나.

공감과 소통이 가르치는 일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으면서, 학생들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지 못해 당황한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면서, 왜 나는 매년 같은 문제를 반복해서 겪고 있었을까? 스스로에게 되물어 보면서 나의 고정관념 몇 가지를 살펴보게 되었다. 하나는 일 년마다 바뀌는 수백명의 학생 이름을 외우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었다. 두 번째는 남들도 모두 그렇다는 합리화였다. 마지막 하나는 3월이면 수업 외에도 날마다 ‘당장 해야만 하는’ 수십개의 중요한 업무를 학생보다 더 중요시한 것이다. 결국 업무에 시간을 빼앗기고 미루다가 마음만 앞선 채 한 해를 지내고 만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고정관념은 줄어든 학생 수를 직시함과 동시에 남들이 다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임으로써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에게 당장 해야 할 정말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를 물었을 때 명료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작년 신학기에 학생들과 문장 완성 검사를 통해 서로 알아가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질문 가운데 ‘선생님들은 우리를 ○○○한다’가 있었다. 아이들의 답에 ‘귀찮아’ ‘관심 없어’가 많아 가슴 아팠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자신들의 이름을 모르는 나도 아마 그런 선생으로 비치지 않았을까? 

기꺼이 시간을 낼 마음만 있다면 어떤 문제든지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어떤 대상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것이 내게 가치 있다는 의미이고 그것이 가치 있을 때 우리는 그 대상에 시간을 투자한다. 아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시간 사용의 우선순위를 바꾸거나 기꺼이 시간을 내야 마땅하다.

새 학기 준비를 하면서 새롭게 다짐하는 것은 아이들 이름을 한 달 안에 외우는 것이다. ‘배울 사람이 준비되면 스승은 나타난다’고 하더니 여기저기서 비책을 전수해주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올해는 아이들 이름을 다정하게도 불러보고, 크게도 불러보고, 재밌게도 불러보고, 맘껏 불러보는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한다.

PS. 애들아! 명찰 좀 달아줄래?

<손연일 | 운암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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