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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지갑에는 신분증과 도서관회원증을 빼면 딱 두 장의 카드가 있습니다. 신용카드 한 장, 체크카드 한 장. 적립카드는 한 장도 없습니다. 그래서 지갑이 참 얇습니다. 체크카드에 매달 일정 금액을 충전하고 체크카드만 씁니다. 충전 금액이 일찍 떨어지거나 늦게 바닥나는 걸로 더 쓰고 덜 쓴 정도도 체크할 수 있어 좋고, 잔액을 늘 생각하니 아껴 쓰게도 됩니다(신용카드는 교통카드로 쓰다 체크카드 잔액 부족 시 쓰는 비상용입니다). 그래서 저는 카드 결제일이 두렵지 않습니다. 교통비뿐이니까요. 하지만 사람들은 기꺼이 긁어대다 결제일마다 꺼이꺼이 울더군요.

신용카드는 1950년대 미국의 ‘다이너스클럽’이란 회원제에서 시작된 만큼 돈 많은 상류층에서부터 발달했습니다. 번거롭게 다량의 현금을 갖고 다니지 않아도 되고, 이 카드가 곧 내 신분과 능력이란 과시도 됐으니까요. 그러던 것이 외환위기 이후 정부의 정책으로 너도나도 신용카드를 만들게 되었는데 부작용이 만만찮습니다. 소비를 주체 못해 카드빚에 허덕이기, 끌어다 쓰고 카드 돌려막기, 12개월 할부로 지르고 12조각짜리 빚 만들기, 대금 빠져나간 빈 통장에 또 카드빚으로 살아가기.

자신의 분수와 격에 맞춰 살라는 속담으로 ‘가는 밥 먹고 가는 똥 눠라’가 있습니다. 가는 밥이란 곡식을 간 밥, 죽(粥)입니다(가는 똥에 맞춰 ‘가는 밥’으로 쓴 듯합니다). 그 옛날 양식 부족할 때 양을 불려 먹던 게 죽이죠. 그런 밥 먹으면 똥줄기도 가늘게 나옵니다. 가난한 살림에 굵직하게 먹다간 나중엔 똥 나올 것도 없이 굶주린다는 말입니다. 분수껏 가늘게 버티며 도모해야죠. 신용카드는 카드사가 대출로 대납해주는, 매달 변제할 ‘대출’카드입니다. ‘신용’이 외상인 줄 알고 매달 빚내지 맙시다. 지갑 얇으면 지갑 얇게 다닙시다. 포인트에 눈멀면 포인트를 못 잡습니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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