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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한문 공부의 기본 교재였던 천자문의 첫 구절은 천지현황(天地玄黃) 우주홍황(宇宙洪荒)이다. 하늘[天]은 시간이고 땅[地]은 공간이며, 시간의 속성은 변화[動]이고 공간의 속성은 고정[靜]이다. 주역(周易)은 ‘하늘의 운행은 건실하니 군자는 이처럼 스스로 강해지기를 쉬지 않는다. 땅의 형세는 두터우니 군자는 이처럼 덕을 쌓아 만물을 포용한다(天行乾 君子以自强不息 地勢坤 君子以厚德載物)’라고 했다. 한자어 우주(宇宙)는 이 시간과 공간의 무한성을 의미한다. 성호(星湖) 이익은 우(宇)를 ‘무소불포(無所不包)’, 즉 ‘모든 존재를 포용하는 곳’으로, 주(宙)를 ‘생성불궁(生成不窮)’, 즉 ‘존재의 생성이 끊이지 않는 것’으로 정의했다. 우주에 상응하는 영단어 유니버스(Universe)도 시공간(時空間) 전체를 의미한다.

인간이 무한(無限)을 인지하는 문제는 철학의 대상이니 내가 감히 범접할 수 없다. 다만 인간은 무한을 ‘유한의 연쇄’로 분할하여 자기 삶을 담는 시공간으로 인지하는 능력을 키워왔다. 문명이 탄생하자마자 땅에 선을 그어 영토니 도계(道界)니 사유지니 하며 분할하는 습성이 생겼고, 현대의 인간은 바다와 하늘에까지 선을 그었다. 공간을 더 많이 점유하고 남의 공간을 점령하려는 것은 인간의 보편 습성이다. 시간은 어떻게 분할했을까?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하늘의 운행[天行]에는 규칙적인 리듬이 있다. 인간은 그 규칙을 인지하여 시간에 대한 개념을 구축했다. 고대에 하늘의 운행을 관찰하고 그 리듬을 파악하여 기록하는 일은 사제들의 몫이었다. 사제들은 하늘을 신(神)의 거소(居所)로 보았으며, 하늘의 운행을 통해 신의 뜻을 알 수 있다고 믿었다. 한자 시(時)는 태양[日]과 사원[寺]을 붙여놓은 글자다. 글자만 봐도 시(時)가 사(寺)보다 나중에 만들어졌거나, 적어도 동시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영어 time도 tempo에서 갈라진 말이다. 인간은 천체 운행의 템포를 인지하고 그 템포에 따라 무한한 시간을 유한한 ‘시간들’로 분할한 다음에야, 자기 시대와 자기 시간을 인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시간을 분할하는 기준과 방식은 처음부터 종교적이었다.

하루, 한 달, 한 해가 모두 해와 달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구획되었으며, 동아시아 사람들은 하루를 12개로 분할하여 각각에 지신(支神)의 이름을 붙였다. 또 하늘과 땅과 인간이 서로 감응한다는 관념에 따라 한 해를 다시 24개의 절기(節氣)로 나누었다. 시간을 지배하는 신의 권능을 대행할 자격은 오직 신의 아들에게만 주었다. 유교 문화권에서는 황제=천자(天子)가 지정한 연호로 해 단위 이상의 ‘시간대’를 구성했다. 유교 문화권에서 천자의 생명은 유한했기에, 시간대 역시 유한했다. 반면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영생하는 하나님의 아들=예수 그리스도가 시간을 지배한다. 그래서 이 해는 예수 강림 2019년이고 내년은 2020년이며, 1000년 후는 3019년이다. 혹자는 쌓였다가 무너지기를 반복하는 시간과 무한히 누적되는 시간의 차이가 두 문화권 사람들 사이에 ‘발전’에 대한 관념의 차이를 낳았다고 본다. 이 밖에도 우리나라의 정월 대보름, 한식, 단오, 칠석, 추석처럼 나라마다 고유한 시간 식별 부호가 있었다. 시간을 여러 기준에 따라 여러 조각으로 분할하고, 어떤 날에는 특별한 부호를 붙임으로써 인간은 무한한 시간대 안에 존재하면서도 망연함과 지루함을 극복할 수 있었다. 특히 축일(祝日)은 시간의 고유 속성인 ‘항상성(恒常性)’을 전복하는 특별한 날이었다. 하지만 이런 날들에도 인간이 직접 관여하지는 못했다. 근대 이전의 축일은 석가탄신일이나 크리스마스처럼 신이나 신격을 얻는 사람의 탄생일이 아니면, 해 달 별의 움직임과 관련된 날이거나 종교 의례와 관련된 날들이었다.

인간이 특정한 시간에 다른 인간(들)의 행위를 부착하기 시작한 것은 국가가 신의 지위에 오른 ‘국민국가’ 시대부터였다. 우리나라에서 국경일이 처음 제정된 것은 대한제국 선포 이듬해인 1898년이었다. 1899년 음력 7월25일, 우리 역사상 최초의 국경일 행사인 만수성절(=고종의 생일) 기념행사가 열렸다. 두 달 뒤인 음력 9월17일에는 태조 이성계의 조선 건국을 기념하는 계천기원절 행사도 열렸다. 관청, 상점 등의 대문 옆에 국기를 거는 의례도, 각 단체 회원이나 각급 학교 학생들이 손에 국기를 들고 함께 걷는 행사도 이때 시작되었다.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 전인 1919년 3월1일. 한국인들은 독립을 선언하고 그 사실을 자축했다. 본래 만세(萬歲)는 축수(祝壽)의 하나로서 상대가 만 년 동안 살기를 축원(祝願)하는 말이다. 대한제국 시대에는 ‘황제 폐하를 위하여 만세를 부르고, 황태자 전하와 이천만 동포를 위하여 천세(千歲)를’ 불렀다. 그러나 이때는 독립한 나라를 위하여 만세를 불렀고, 자기를 위하여 만세를 불렀다. 이로써 한국인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신이나 황제, 황제의 조상이 아니라 바로 ‘자기들’의 행위를 시간에 새겨 넣을 수 있게 되었다. 민중의 국경일이 생긴 것이다. 시간과 인간의 관계라는 면에서 보더라도, 삼일절은 ‘민족사의 신기원’이 열린 날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삼일절과 대종교의 종교 축일이던 개천절을 국경일로 삼았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인 1949년에는 여기에 광복절과 제헌절을 추가했다. 모두 현존 국가의 탄생과 관련된 날이다. 1920년 제1회 삼일절 기념식에서 안창호는 이렇게 말했다. “이날은 가장 신성한 날이요, 자유와 평등과 정의의 생일이오. 이날은 한두 개인이 만든 것이 아니요 이천만이 만들었고, 소리로만 만든 것이 아니요 순결한 남녀의 피로 만든 날이오.” 곧 3·1운동 100주년의 삼일절이다. 독립운동 기념일일 뿐 아니라 보통사람들의 행적을 시간에 새겨 넣은 날이라는 점에서도, 한껏 기뻐해야 마땅한 날이다.

<전우용 |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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