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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 위주 교육을 저차원적 교육, 입시를 넘어선 교육을 고차원적 교육이라 거칠게 단순화해보자. 주입식·암기식 교육을 저차원 교육, 창의력·사고력을 기르는 교육을 고차원 교육이라 해보자. 저차원적 교육을 넘어 고차원적 교육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나에겐 이 당연한 과제가 사치스러운 일로만 여겨질 때가 많다. 학교의 현실 때문이다. 좀 심하게 단순화해 학교의 문제점을 드러내자면 학교는 교육기관이 아니다. 저차원적 교육에서 보든 고차원적 교육에서 보든 학교는 교육기관이라기보단 사무행정기관에 가깝다.

학교는 교육 그 자체보다 교육에서 파생하는 사무·행정적 업무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무엇보다 교육청과 교육부에서 내려 보내는 사업과 행정업무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단순히 중요하게 여기는 선에 그치는 게 아니다.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만들어서 하고, 간단하게 해도 될 일을 복잡하게 한다. 조금 복잡한 것은 매우 복잡하게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까지 만들어서 한다. 그래서 교육 그 자체로 향해야 할 교사의 관심과 에너지를 끝없이 소모하게 만든다. 교육부와 교육청의 관료주의적 행정이 이러한 폐단을 강요하고 있으며, 사무·행정업무 위주의 학교제도와 조직체계가 그 폐단을 일상화한다. 교육은 몸통이고 사무·행정업무는 꼬리에 불과한데 학교에는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주객전도 현상이 뿌리 깊이 고착돼 있다.

이러한 폐단을 없애려면 교장의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대부분의 교장은 그 폐단에 눈을 감고 있다. 단순히 눈을 감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앞장서 그 폐단을 강화하고 심화시키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왜 그럴까? 교장자격증제도와 그에 연계된 교장승진제도의 필연적 귀결이다. 교장 자격증을 따기 위한 승진점수는 어떻게 쌓을 수 있나? 나에겐 복잡하고 어렵기만 한데, 분명한 것은 교육 그 자체에 대한 애정과 열정은 아무런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교육에 바쳐야 할 관심과 에너지를 빼내어 다른 곳에 돌릴수록 승진점수를 쌓고 교장 자격증을 받는 데 오히려 유리하다는 것이다. 자신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다른 교사들까지 그렇게 만들어야 그 유리한 정도가 더 커진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눈곱만큼에 불과하지만 교육부가 비중을 확대하려는 ‘내부형 교장공모제’는 교장 자격증이 없는 교사도 교장이 될 수 있는 제도다. 극히 작은 변화임에도 불구하고 기존 승진제도를 옹호하는 세력의 반발이 거세다. 그들은 교장 자격증이 교장 자격을 증명하는 유일한 증표인 것처럼 말한다. 허황한 소리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는 것이 오히려 진실에 더 가깝다. “교장 자격증은 교육자인 교사가 교육자로서의 영혼을 상실해간 증표에 불과하다.”

지금의 교장자격증제는 아이들과 함께 뒹굴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의 소중함을 모욕하고 훼손하는 제도다. 다른 전문직 그 어디에서도 존재하지 않는 기괴한 제도다. 병원장이 되기 위해 의사에게 또 다른 자격증이 필요하지 않고, 대학 총장이 되기 위해 교수에게 또 다른 자격증이 필요하지 않다. 경찰, 검찰, 법원 다 마찬가지다.

아주 조금에 불과하지만 내부형 교장공모제의 비중을 확대하려는 교육부는 칭찬받을 만한가? 방침 하나만 보면 분명히 그러하다. 그러나 교장자격증제도와 교장승진제도 전반을 사실상 지금 그대로 유지한다는 점에 주목하면? 칭찬은커녕 혹독한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이기정 | 서울 미양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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