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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친절한 사람들이 일하는 공간 가운데 하나가 내겐 우체국 같다. 여러 해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서점에 들렀다 충동적으로 카드를 한 세트 산 나는 선배선생님들께 보낼 연하장을 작성하여 부치러 갔다. 연말이라 우체국에는 사람이 아주 많았다. 직원분 말씀이, 물량이 밀려 일반엽서는 4~5일가량 소요될 거라 하셨다. 그러면 새해일 텐데, “메리 크리스마스”라 쓰인 카드를 연초에 받으면 얼마나 김이 새겠는가? 더 빠른 방법은 없는지 물었더니 특급등기인가 있기는 하다셨다. 무심코 “그걸로 해주시겠어요?” 하자 그분은 손에 쥔 봉투들과 내 얼굴을 번갈아 살피더니 “이거 연하장 아닌가요?” 물으셨다.
특급은 직접전달이 원칙이라 수령인에게 전화가 간단다. 수령지로 기재된 대학들은 현재 방학일 테고 수령인들은 손윗사람일 듯한데, 오히려 받는 분을 번거롭게 해드리는 결례를 범하지 않겠냐 하셨다. 연하장은 본디 늦게 받아도 기분 좋은 법이라며 일반우편으로 보낼 것을 권하셨다. “네? 네…” 하며 엉겁결에 그렇게 했다. 그리고 두고두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그분이야 안에 든 것이 연하장이든 업무서류든 알 바 아니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밀려들어 정신없던 와중에 수령지와 고객의 표정에서 그것이 ‘긴급하지 않음’을 유추하셨던 따스한 관심과, 우편매너에 무지한 사회초년생이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도록 조언해준 배려에 감사했다.
왜 우체국에서는 항상 좋은 분들을 만날까. 문득 궁금해졌다. 한국우정사업본부는 구글처럼 꿈의 기업이란 말인가. 그런데 떠올려보면 해외에 있을 때도 그랬다. 지구 건너편에서 공부할 무렵, 지인에게 부칠 소포꾸러미를 품에 안고 있었더니 할아버지 직원분께서 “왜, 너도 그 소포와 함께 바다 건너 날아가려고?” 농담을 던지셨다. 그리고 이어서 “너의 그 웃음이 참 좋다. 넌 앞으로도 항상 그렇게 웃으며 살아라, 알았지?” 하셨다. 웃음이 예쁘다는 칭찬은 그때 처음 들었다.
내가 우체국에서 ‘먹어주는’ 얼굴인 건가 하며 친구들과 농담을 주고받다 생각하니, 그곳에 갈 때면 나는 언제나 웃고 있었던 듯하다. 내 엽서나 선물꾸러미를 받게 될 상대방의 놀라움과 즐거움을 상상하며 표정이 아이스크림을 갓 꺼내든 아이처럼 환했을 것이다. 우체국에서 상냥한 이들만 만났던 것은 그분들이 실제로 친절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선물 보내는 순간의 설렘이 그분들께 전해져서일지도 모르겠다.
새해 우리 앞에 놓일 하루하루를 우체국 찾아갈 때의 얼굴로 맞이하면, 연말 즈음 우리는 저마다 ‘웃음이 예쁜 얼굴’에 조금 더 가까워져 있지 않을까.
<이소영 | 제주대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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