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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의 분위기는 대부분 밝다. 인천공항은 파두가 울려 퍼지기에 적당하지 않은 곳이다. 여행 가는 사람 특유의 명랑함이 있다. 여행객이 명랑하면 여행객으로 가득 찬 공항도 덩달아 명랑해진다.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 운명이 지배하는 마젤란 시대의 항구는 다르다. 대체 돌아올 보장이 없음에도 마젤란 시대 때 사람들은 왜 배를 타고 떠났던 것일까? 비록 5척 중 1척이 돌아오지 못하는 위험한 여행이었지만, 만약 돌아오기만 한다면 배를 타고 떠난 사람들은 카지노의 잭팟에 버금갈 일확천금을 노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항해를 후원했던 스페인 왕궁과 마젤란이 맺은 계약서를 살펴보면 그가 유서까지 쓰고 항해를 떠난 이유를 알 수 있다. 마젤란은 귀환한다면 발견한 나라에서 얻어질 수입의 20분의 1을 자기 몫으로 챙길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6개 이상의 섬을 발견하면 그 섬의 3분의 1인 2개의 섬에 대해 마젤란은 특별권을 갖게 된다. 발견한 모든 육지와 섬에서 마젤란은 귀족 신분과 총독의 지위를 얻을 수 있고, 그 지위를 자녀에게도 상속할 수 있다. 그래서 마젤란은 유서까지 쓰고 항해를 떠났던 것이다. 마젤란은 그런 셈을 하며 위험을 무릅쓰고 바다 저 멀리로 떠났다지만, 대체 한 해 2400만명에 달하는 한국인이 해외여행을 떠나는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 그 이유는 여행객들이 들고온 가방의 크기와 색만큼이나 제각각일 것이다.
지리적으로는 반도이지만, 대륙으로 가는 육로가 막혀 있는 한국은 사실상 섬이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그 섬에서 해외로 나갈 수 있는 자유는 1989년 이전까지는 없었으니, 우리는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좋다. 어쨌든 한 해에 24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각자의 이유로 한국이라는 섬에서 잠시 벗어나 해외여행을 떠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시인 김기림은 “세계는/나의 학교/여행이라는 과정에서/나는 수없는 신기로운 일을 배우는/유쾌한 소학생”이라고 했다. 김기림 시를 빌려 표현하자면 한 해 2400만명의 사람들이 지불하는 여행비용은 ‘세계라는 학교’에서 ‘신기로운 일’을 배우기 위해 치르는 수업료라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오히려 해외여행을 통해 자국중심주의를 강화시키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는 혜안을 얻기도 한다.
때로 수업료는 돈가치를 하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어떤 수업료는 괜한 비용일 수도 있다. 한 해 2400만명이 넘는 사람이 치르는 수업료는 어떤 종류일까? 그리고 나의 수업료는?
<노명우 | 아주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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