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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은혜를 입고도 도리어 그 사람을 나무라거나 원망한다는 속담으로 ‘물에 빠진 사람 건져 놓으니 망건값 내라 한다’가 있습니다. 물살에 휩쓸려 허우적거리며 살려달라는 사람이 있어서 누군가 목숨 걸고 뛰어듭니다. 구조된 사람이 가쁜 숨을 쉬면서 죽을 뻔했다고 안도하며 여기저기 더듬어보니 이마에 두른 비싼 망건이 찢어져 있습니다. 물에서 끌어내다 망가진 것 같습니다. 머리나 목 말고 팔이나 허리 잡고 나왔으면 안 망가졌을 거 아니냐고, 이 망건 어쩔 거냐고 물어내랍니다.

같은 속담 ‘물에 빠진 사람 건져 놓으니 내 봇짐 내라 한다’도 이와 같습니다. 나는 건졌으면서 내 보따리는 왜 못 건졌냐고, 그게 어떤 보따린데 당장 찾아내라고, 아까는 그저 살려만 달라던 사람이 두 발 동동거리며 구조자를 원망으로 윽박지릅니다. 이런 황당한 경우가 오늘날에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소방관은 열쇠공도 아니면서 전문가를 불러 문 따는 기술을 배웁니다. 미국 등 선진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긴박한 상황으로 문 부수고 들어가도 소방관이 수리비를 물어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집 다 타겠다고 빨리 꺼달라 난리쳐서 문 부수고 들어가 번지는 불 잡아주면 고작 이만한 불로 문 망가뜨렸다고 변상하라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불가피한 경우라면 법적으로 면책되지만 그 불가피를 입증하기란 또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소방관이 사비로 보상하는 어처구니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목숨 걸고 화마와 싸우고 나서도 압수수색에 수사까지 받는 요즘입니다. 어쩌면 그 화재의 발단이 된 힘 있는 자들이 시선을 돌리고자 책임 전가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목숨에 이익까지 구하려는 배은망덕 물귀신들에게 사람 살리고 동네북으로 두드려 맞는, 땀보다 눈물로 더 젖는 우리 영웅들의 넓고 씁쓸한 등입니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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