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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스위스 제네바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아동권리위원회 심의에서 윈터 위원이 한국 정부 대표단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한국 정부는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데 그 교육의 목표란 과연 무엇인가. 아동을 통해 돈을 벌려는 것인가, 아니면 아동이 스스로 사고하고 결정할 수 있는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인가?” 그러고는 지나친 입시경쟁 교육에 대해 지적했다고 한다. 아동을 통해 돈을 벌려 한다는 말은 교육을 좋은 대학 가서 좋은 일자리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 일종의 학벌투기 현상에 대한 지적으로, 그 흐름 속에 일조하고 있는 한 명으로서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혹자는 그래도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게 한 것이 교육열 덕분이고, 작은 나라에서 살아가려면 경쟁이 필수인데 속 모르는 소리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학벌투기 과열로 아이들의 학업 스트레스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이다.
몇 해 전 수업 시간이 생각난다. 7월 무더운 어느 여름날 7교시 마지막 시간이었다. 교실에 들어가니 아이들 대부분이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어떻게든 깨워서 수업을 시작하려 하는데 이쪽 아이 일으켜 놓으면 저쪽 아이 다시 엎드리고 분위기가 전환되지 않아 어떡하나 고민하다 그 전 주에 가르쳤던 ‘비폭력 대화법’의 느낌말로 자신의 상태를 한 단어로 표현하도록 했다. 아이들은 ‘졸린, 지겨운, 피곤한, 답답한, 돌아버릴 것 같은, 심심한, 배고픈’ 이런 단어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느낌 뒤에 충족되지 않은 욕구에 한 명 한 명 공감하니 시들어가는 화분에 물 주면 살아나듯 하나둘씩 아이들의 머리가 들리고 눈빛에 생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날 아이들과 대화하며 그들의 고통에 깊이 공감했다. 우리 때는 공부를 하고 싶어도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고, 누구는 공부가 제일 쉬웠다고 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하루 7~8시간을 학교가 정한 시간표와 규율 속에서 보내고 대부분 집에 돌아가 3~4시간을 학원에서 보낸다. 이를 견디고 있다. 부모를 위해,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는 미성년이기에 감내한다. 한 아이가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특목고를 준비하던 아이였는데 “우리 엄마는 내가 행복한 꼴을 보지 못한다”고 했다. 사춘기가 반항기라 하더라도 무슨 말인가 싶어 되물으니 엄마는 자신이 잠깐 TV를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게임을 하면 예외 없이 ‘그래 가지고 특목고 갈 수 있겠느냐’고 야단을 친다는 것이다.
이 시대 대한민국 학생들은 대부분 행복하지 않다. 어른들은 아이들 앞에서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이라는 깃발을 연신 흔들며 미래를 위해 현재의 삶을 포기하고 경주마처럼 달리라고 독려하지만 언제까지 아이들이 그것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고 속아줄지 모르겠다. 부모세대가 사는 모습을 봤을 때 그렇게 살아도 썩 행복해 보이지 않는데 말이다.
0.98명이라는 아주 낮은 출산율이 어려운 취업과 높은 집값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삶의 생기가 조금씩 빠져나가는 아이들의 표정을 보며 희망을 어디서 붙잡아야 할지 모르겠다. 교육관료와 교사들은 교육의 목표가 ‘입시 경쟁 교육이다’라고 솔직하게 인정이라도 하자. 그래야 ‘학교를 왜 다녀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아이들의 의문에 공감할 수 있고 더 이상 회유와 협박으로 아이들을 현 교육제도에 묶어두려는 공모 행위를 멈추고 새로운 변화를 함께 모색할 수 있지 않겠는가?
<손연일 월곡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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