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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네 말만 하고/ 나는 내 말만 하고//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대화를 시작해도/ 소통이 안되는 벽을 느낄 때”

이해인 시인의 시 ‘내가 외로울 땐’ 중 일부이다. 두 사람 사이에도 소통이 어려울 때가 있다. 3명 이상이 모인 집단에서는 민주적 의사결정에 대한 고민이 늘 있다.

사회나 학교나 마찬가지다.

학교는 학생들이 처음으로 사회화를 경험하는 곳이고 민주주의를 경험하는 배움터로서 중요하다. 그래서 민주적 공동체는 현장의 오랜 화두다.

그러나 학교가 정말 민주적 공동체가 될 수 있을까? 민주적 학교에 대한 흔한 오해가 있다. 첫째, 다수가 원하는 것으로 결정하는 것이 민주적이다. 둘째, 권위를 무시하면 진보적이다. 셋째, 자신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으면 비민주적이라고 주장하는 목소리 큰 소수가 통한다. 넷째, 의견을 말하는 사람과 책임지는 사람이 다르다.

첫째 오해는 우리가 다수결 외에 다른 의사결정방법에 익숙지 않고, ‘왜’ ‘무엇’ 때문에 협의하는지에 대해 분명히 하지 않을 때 일어난다. 학교에서 하는 의사결정은 학생을 위한 교육적 판단이다. 학생들의 격차는 학교마다 다르다. 그래서 학교마다 학생들에게 맞는 교육활동이 다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문해력이 부족한 학생이 한 학급에 20%에 이르는 학교라면 문해력을 우선과제로 설정해서 기초·기본 학력을 키울 수 있는 방안을 교사들이 같이 고민하고 적용해야 한다. 이때 교사의 자율성과 자발성을 내세우면 교사의 책무성과 충돌한다. 교육적으로 필요한 것과 다수가 원하는 것이 일치하기 힘들다. 먼저 ‘무엇이 정말로 중요한가’에 대해 명확히 해야 한다.

둘째, 셋째, 넷째 오해는 연결된다. 우리 사회나 학교에서 사람들은 권위주의에 질려왔다. 그래서 권위에 대한 거부감을 때로 정당한 권위 행사를 부정하는 근거로 사용한다. 또 교사조차도 자신의 주장을 말하는 데 주저함이 있다. 회의 때 많은 교사들은 침묵한다. 이때 조직마다 종종 있는, 혼자만의 정의의 가면을 쓰는 소수가 큰 목소리를 낸다. 그는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이 자신의 의견대로 결정되어야 정의롭고 민주적인 학교다. 한 예로, 담당부서에서 학생 공간을 확보해주고자 잘 쓰지 않는 교사 공간을 학생 복지 공간과 다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교사들에게 양해를 구해 시행한다. 한 교사는 이게 마음에 들지 않자 교사 공간을 편법으로 사용한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하며 민원을 제기한다. 행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나지만 담당자는 지친다. 이런 행위는 공동체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구성원의 선의를 꺾는다. 이런 일을 겪거나 지켜본 교사들은 다음에 나서려 하지 않는다.

정말 학교는 민주적 공동체가 되기 어려울까? 가능하다. 교사는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는 자발성이 아니라 과업에 따라 효과적인 교육적 방법이 결정되면 협업할 수 있는 사람이다. 민주주의의 기본은 공감 능력이다. 공감 능력 있는 다수가 서로 귀 기울여 듣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옳은 주장을 한다고 옳은 사람인 것은 아니다. 일상에서 겸허와 존중의 자세로 임하면서 옳은 이야기를 하는 좋은 사람의 의견이 소중하다. 의사결정 시 ‘무엇이 정말로 중요한가’ ‘내가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적어도 이 정도는 우리가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나누는 것이 소중하다.

<손민아 | 경기 전곡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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