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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의 갑질 문제가 또다시 불거졌다. 이번 사건의 주역들은 한진그룹 조현민 대한항공 전 전무와 어머니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이다. 조현아 전 부사장에 이어 일가족이 연타를 날린 셈이다. 그리고 아버지인 조양호 회장의 반복되는 사과가 있었다.

재벌의 갑질 사례는 한진그룹을 제외하고도 많고, 하루 이틀 문제도 아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오너로 예정되어 있는 그들 사회의 악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갑질로 인한 손실을 당사자가 전부 감당하면 좋겠지만, 문제는 주주들과 국민, 직원들이 나눠서 진다는 것이다. 조현민 전 전무의 사건이 알려진 4월12일 대한항공 주가는 매도세에 밀려 전일 대비 6.5%나 하락한 3만3550원으로 마감되었고, 지금도 그 수준에 머물고 있다. 오너리스크로 당일 손실을 보고 매도했거나, 보유하고 있는 일반주주와 12.45%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까지 손실을 보고 있는 상황이다. 직원들은 기업의 이미지 추락으로 정신적 고통과 우리사주조합 주식 가치하락까지 겪고 있다. 갑질 당사자는 사과와 경영일선에서 잠시 물러나고, 범죄 혐의로 재판을 받는 정도면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따라서 이러한 일로 발생할 사회적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강력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온 가족이 ‘갑질’ 논란에 휩싸인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이 외항기를 이용할 때 해외지점 직원들을 동원해 항공기 착륙 게이트를 변경하거나 보안 검색 편의를 요구하는 등 과잉의전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재벌의 갑질을 불러오는 근본적 배경은 커질 대로 커진 경제력 때문이다. 이를 등에 업고 대대로 경영권 세습과 황제경영을 하며, 사회 곳곳을 지배하고 있다. 따라서 경제력 집중 해소가 근본적 방편이지만, 오너를 견제할 수 있는 지배구조 개선과 행위 자체에 대한 시장규제도 병행되어야 한다. 먼저 지배구조 개선은 지배주주로부터 독립적인 이사와 감사의 선출, 소수주주의 권한을 강화하는 집중투표제와 전자투표제 의무화, 스튜어드십 코드 강화 등을 들 수 있다. 최근 법무부가 검토의견을 국회에 제출해 이슈가 되고 있는 상법개정안이 반드시 통과되어야만 하는 이유이다. 다음으로 갑질 행위 자체에 대한 시장규제이다. 즉 기업가치 하락으로 손실을 본 주주들에 대해 사재로 배상을 하도록 하고, 중대 경제범죄로 처벌을 받았을 경우, 경영에 복귀하지 못하도록 경제·경영적 책임을 지우는 방식을 고려해 볼 수 있다. 기업 자체로 이를 정관에 반드시 규정하도록 하고, 잘 지켜지지 않을 경우 거래소를 통한 강제적 규제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상장회사의 경우, 계열사를 포함해서 정관에 반드시 명시할 것을 상장 유지조건으로 규정한다면, 국회를 거치지 않고도 할 수 있다.

기업 간 거래에서 발생하는 불공정 갑질은 징벌배상제와 디스커버리제도를 통해 효과적으로 방지할 수 있다. 3배 정도의 손해 배상 개념이 아니라, 징벌성격의 상한이 없는 배상액 또는 기업 매출액 대비 10% 정도의 수준은 되어야 한다. 피해자의 입증책임 완화를 통해 약자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디스커버리제도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제도 도입으로 행위를 했을 때 잃는 것이 막대하다는 것을 사전적으로 인식시켜줘야 한다.

세상이 바뀌고 있다. 재벌들도 전근대적인 사고를 넘어, 갑질을 당하는 상대방의 고통을 알아야 한다. 그 행동이 피해자뿐 아니라, 기업과 주주, 국민들에게까지 미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기업가 정신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서 한국경제 발전을 위해 기여하기를 바란다.

<권오인 |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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