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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덥고 습한 날이었지만, 쌍둥이 남매의 오후는 평화로웠다. 에어컨도 없는 반지하 집에 선풍기를 세게 틀어놓은 채, 남자아이는 블록놀이를 하고 있었고 여자아이는 김치 부침개를 해 먹겠다며 분주했다. 학교에 안 간 지 3주쯤 되었다는 아홉 살 쌍둥이의 일과는 단순했다. 집에 있고 싶을 땐 엄마와 요리를 하거나 책을 읽고, 밖에서 놀고 싶은 날이면 공원이나 박물관, 야외수영장 같은 곳을 찾아다녔다. 아이들 엄마는 ‘독을 빼는 중’이라고 표현했다. 자꾸 눈치를 보고 행동을 주저하는 학교에서의 습관이 남아 있어 일단은 마음껏 놀게 하며 치유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남매가 학교를 가지 않게 된 발단은 초등학생들 사이에 유행하는 ‘복종놀이’ 때문이었다. 한 아이를 지정해 자기들 명령에 복종하게 하는 놀이인데, 그 명령은 주로 다른 친구를 대신 괴롭히는 일이었다. 복종놀이에 지속적으로 지명된 쌍둥이 남자아이는 극도의 스트레스로 우울증을 얻었고 어느 날 발작에 가까운 경련을 일으켰다. 이를 제지하는 교사를 할퀴고 물어 교권 침해로 신고당하면서 이 사건은 교사와 아이의 갈등으로 불거졌다. 아이도 피해자 아니냐고 하소연하자, 그건 학교폭력위원회에 따로 신고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교내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처벌로 해결하려는 기계적인 접근은 모두에게 상처만 남겼다. 교사는 병가를 냈고, 엄마는 아이를 더 이상 억지로 학교에 보내지 않기로 했다. 같은 반에서 이 과정을 다 지켜본 여자아이도 등교 거부를 했다. 왜 자기만 학교에 가야 하냐고, “엄만 나를 사랑하지 않느냐”는 딸의 말에 결국 엄마는 두 아이와 의도치 않은 홈스쿨링을 시작하게 되었다.

학교에 가지 않는 초등 저학년 연령대 어린이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학교 밖 청소년들을 위한 지원은 확대되고 있지만, 기본법상 청소년에 속하지 않는 만 9세 이하 학교 밖 어린이에 대한 관심과 지원은 미비하다. ADHD, 학교폭력, 교사와의 갈등, 학업 스트레스 등으로 학교생활이 어려운 초등학생들은 늘고 있는데 책임회피성 제재만 강화될 뿐 아무 대책이 없다. 어쩔 수 없이 학교에서 밀려나면 교육에서 돌봄까지 모든 것이 부모의 몫이다.

학교를 그만둘 때, 부모들이 가장 걱정하는 건 아이의 사회성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여 있다고 사회성이 저절로 길러지진 않으며, 오히려 미숙한 공동체 안에서는 약육강식과 승자독식의 부조리를 몸소 익힐 뿐이다. 교육사회학을 연구한 가도와키 아쓰시는 사회성과 사회력을 구분해 설명한다. 사회성이 사회에 적응하는 능력이라면, 사회력은 사회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바꿔나가는 능력이라는 것. 그런 면에서 학교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사회력을 키울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안전한 학교’라는 것은 아무 문제도 일어나지 않는 곳이 아니라 ‘위험한 사회를 안전하게 배울 수 있는 성숙한 곳’을 뜻한다. 법과 규제로 그 배움의 기회를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아이는 카메라를 향해 익살스럽게 브이자를 그렸다. 얼마 전까지 우울증 고위험군이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밝았다. 학교에 가지 않는 것만으로 많은 게 좋아지고 있어서, 엄마는 일단 걱정을 내려놓기로 했단다.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 엄마 품을 벗어나게 될 땐 어찌 해야 할지 막막하지만 말이다. 엄마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매는 사이좋게 서로에게 의지하며 학교의 상처를 달래가고 있었다.

<장희숙 | 교육지 ‘민들레’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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