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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관련된 사회, 문화적인 활동이 이전에 비해 크게 늘어나고 있다. 과학자들이나 공학자들이 학회나 학술지를 통해서 자신들의 연구 성과를 내놓는, 전문 집단 안에서의 활동이 선진국 수준으로 늘어났다. 곧 없어질 분류일지는 모르겠지만 고등학교에서 문과와 이과의 비율이 이과가 훨씬 많은 쪽으로 역전된 지도 오래다. 고등학교에서부터 과학, 수학을 제법 깊게 배우는 숫자가 젊은 세대의 절반을 넘고 대학에서 전공으로 이어져 과학, 수학을 밥벌이로 삼는 숫자도 제법 된다는 의미다. 개개인의 결정의 총합으로 사회의 문제들을 풀어가는 시대에 과학, 기술과 관련된 내용을 스스로 알아야 하는 필요성은 점점 커져간다.

이런 상황 때문인지, 과학과 기술의 내용들을 일반인들에게 알리는 활동들도 많아지고 있다. 학생들을 주요 대상으로 놓았던 잡지만 있었는데 ‘스켑틱’이나 ‘과학잡지 에피’처럼 성인들을 위한 과학 잡지들이 창간되었고 성인을 대상으로 한 과학 강연도 열띤 호응을 받으면서 열리고 있다. 카오스재단은 단순한 대중 강연을 넘어서 전문가 수준의 과학 강좌를 ‘마스터 클래스’라는 이름으로 열고 있는데 관객을 모을 수 있을까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화학과 물리학을 공부하러 온다. 유전자 조작, 핵발전, 미세먼지, 기후변화 등 현재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많은 현상들을 이해하는 데 과학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과학 연구를 업으로 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인 과학지식은 가지고 있어야 삶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일들을 이해할 수 있고, 그것과 관련된 결정에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 외국어를 익히면 그 언어를 쓰는 나라를 이해할 수 있는 기초를 갖게 되는 것처럼, 일정한 수준의 과학과 수학을 익혀야 삶과 운명을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믿고 있었는데, 수능에서 과학과 수학의 시험 범위를 축소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022년부터 수능에서 수학에서는 기하와 벡터가 빠지고, 과학2 과목이 모두 시험 범위에서 제외된다. 물론 교육과정에서 이런 내용들을 모두 들어내겠다고 보도된 것은 아니라서 시험만 안 본다는 이야기이지 싶다. 하지만, 수능에 포함되지 않는 과목들은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학생들은 잠만 자는 상황에서 대다수를 차지하는 일반고 학생들은 제외된 부분들을 익히지 못하고 고등학교 과정을 끝낼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 대해 축소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조치가 학생들의 부담을 줄여주고, 배우지 않은 것들은 대학 가서 배우면 된다고 한다. 반면에 많은 과학자들은 과학교육의 수준 하락을 걱정하고 있다. 양쪽 모두에게 묻고 싶은 것들이 있다.

과학과 수학의 시험 범위를 줄이면 학생들의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고 보는 쪽은 학생들이 시험을 보지 않는 것들은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지? 교육과정 안에 있는 내용들을 충실히 전달하고 가능하면 많은 학생들의 성취도를 끌어올리는 것을 걱정해야 할 교육당국이 시험 범위만 놓고 교육 정책을 움직이고 있는 것은 교육적이라고 할 수 없다. 공부의 부담을 줄이는 방식에 대해선 과학과 수학이 중요한 시대에 세상을 이해하는 기초는 제공하도록 오랜 시간을 두고 교육과정을 재편해야지 수능 시험 범위 축소 같은 것은 정책이 될 수 없다. 물론 수능 범위 축소를 반대하는 쪽에도 같은 질문을 한다. 전공할 소수의 학생들만 걱정할 것이 아니라, 과학과 수학에 대한 어떤 수준의 이해가 세상 사는 데 필요한지 고민하고 토론해서 오랜 시간에 걸쳐 정성껏 교육과정을 제공할 생각을 해야 하지 않을까?

얼마 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중교육을 통해 양성된 인력이 해야 할 일은 인공지능과 자동 로봇이 점점 대체할 것이고 산업적 요구가 영재 교육에만 집중될 것이므로 영재 교육의 대상이 아닌 학생들에게 시민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금의 교육정책 결정과 관련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분의 글을 읽었다. 실제로 교육청에 시민교육을 담당하는 민주시민교육과가 생겼다. 나는 이런 생각이 과학과 수학 교육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이 아니길 바란다. 인공지능과 자동 로봇이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늘어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과학과 수학을 모르고 그것들이 제공하는 편의를 누리면 된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과학과 수학을 더 능숙히 다룰 수 있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두 다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눈앞에 닥칠 결정을 함께할 민주 시민들이 과학이나 수학을 일찌감치 포기하지 않도록 교육과정을 개편하고 다양한 교육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배울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배워야 한다.

<주일우 | 이음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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