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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진화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자신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관용과 이타심은 가르쳐야 습득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이기적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하면서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에 대한 큰 논쟁이 벌어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도킨스의 주장에 대한 반론 중 하나로, 수학 생물학자인 마틴 노왁은 “진화의 가장 놀라운 면모는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협동하도록 만드는 능력에 있다”고 주장하며 협력하는 이타적 인간이 생물학적 본성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인간이 이기적인가 아니면 이타적인가라는 물음은 이미 동서양의 철학자들이 줄기차게 고민해 온 문제다. 성선설과 성악설을 주장했던 고대 철학자들에 이어 중세의 철학자 토마스 홉스는 ‘모든 인간은 근본적으로 이기적이기 때문에 정부 통제가 없으면 이기심으로 서로를 파멸시킬 것’이라고 했고, 근대의 경제학자 가렛 하딘은 누구나 방목할 수 있는 공유지는 사람들의 이기심으로 풀 한 포기 남지 않게 된다는 ‘공유지의 비극’ 이론을 제시했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인간 본성과 관련된 이런 토론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다만, 이 논쟁이 ‘이기적 주체’인 학부모와 학생들 모두의 욕망을 만족시켜 주면서도 교육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대단한 대학입시 정책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 다른 나라들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쟁들과 다른 부분이다.

우리나라 대학입시는 공식적으로 대학에서 공부할 능력이 되는 학생을 가려내는 선발 기능, 학생들의 자기계발 기능, 바람직한 학교 교육의 방향을 유도하는 교육 기능, 사회 통합에 기여하는 공동체 기능과 같은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기능들이 한데 뒤엉켜 있는 것은 물론이고 학부모들과 학생들의 ‘사회적 계층 확보’를 위한 이기적 욕망의 충족이라는 보이지 않는 기능이 사실상 다른 기능들을 압도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다보니 여러 기능의 문제들이 모두 해결되었다고 하더라도 어떤 계층이나 이해집단의 사회적 계층 선점 또는 계층 보존의 이기적 욕망을 충족시켜 주지 못하면 전체가 문제 있는 것으로 치부되기 마련이다.

연초부터 대입정책포럼이 전국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오는 8월에 발표될 수능시험의 개편 방향은 물론, 요즘 대입의 핵심인 학생부종합전형(학종)에 대한 개선안과 고교학점제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하여 많은 의견이 제시되고 있는데, 과정 중심의 정성적 평가인 학종 전형에 대한 정량적 평가척도를 제시해야 한다는 주장들마저 제시되고 있다고 한다. 과정 중심의 평가와 기록, 그리고 그것에 대한 정성적 평가는 고등학교 교사들이나 대학의 입장에서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학교 밖에서 제공할 수 있는 교육서비스는 성적과 같이 정량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영향을 받은 학부모들의 요구가 제안되고 있는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가치의 교육이 제공되는 공교육과는 달리 학교 밖 사교육의 효과는 금전적 크기에 비례하기 때문에 교육을 통한 계층의 이익 확보라는 이기적 욕망의 달성은 돈의 힘을 통해서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난다. 정량적 평가요소가 학종에 깊이 개입되면 사교육과 같은 외부의 영향력이 평가에 개입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게 된다. 학종이 이기적 욕망의 통로가 되면 이번 교육개혁도 기득권의 먹이로 전락하게 될 수 있다. 대입정책포럼과 같은 자리에서 모두의 지혜를 모을 수 있기를 바란다.

<한왕근 | 교육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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