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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4년간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공동대표 일을 한 적이 있다. 특히 이들의 반민중적 신자유주의정책에 저항해 많은 시간을 거리에서 보내며 열심히 투쟁했다. 그러나 두 가지 후회가 남는다.

하나는 비정규직을 위해 투쟁하면서도 정작 대학의 비정규직인 시간강사 문제를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한 것이다. 특히 정치권이 강사들의 처우개선이라는 이름하에 수많은 시간강사들이 일자리를 잃어야 하는 ‘시간강사 학살 법’을 여야 합의하에 만들어 내년부터 시행하겠다니 더욱 그러하다. 이 법은 워낙 욕을 먹은 원래의 법안 중 일부 독소조항을 뺐지만 기본적인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는 대표적인 악법으로, 교육전문가라는 국회의 관련의원들이 국가의 녹을 먹으며 이같이 한심한 법안이나 만들고 있으니 나라의 미래가 걱정이다.

다른 하나는 학문후속세대를 양성한다며 김대중 정부가 도입한 ‘브레인 코리아(BK) 21’정책을 막지 못한 것이다. 이 정책은 많은 자원을 학문후속세대인 대학원생들에게 지원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학원생들의 연구계획을 받아 이 중 우수한 학생들에게 연구비를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교수들이 연구하고 싶은 연구계획을 제출하고 대학원생들은 단지 조교나 연구보조원으로 참여해 지원을 받도록 만들었다. 민교협은 이 같은 정책이 가뜩이나 ‘교수의 노예’라는 말을 듣는 대학원생들을 더욱 교수들에게 종속되게 만들고 우수한 대학원생들이 자신이 연구하고 싶은 주제를 자율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이유 때문에 교수의 연구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자신의 전공이나 관심과 거리가 먼 엉뚱한 주제를 연구하게 만듦으로써 의도와 달리 학문후속세대 양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향DB)

특히 이 같은 폐해는 인문사회 등 문과분야에 극심하다. 이는 대학원생들이 교수의 연구조교로 참여하는 이공계식의 연구방식을 문과에도 그대로 적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는 이 같은 비판에 귀를 막고 방학임에도 각 대학은 비상연락망을 동원해 응모하라고 지시하는 등 군사작전식의 졸속적인 방식으로 이 같은 정책을 강행했다. 그 결과, 이제 대학원생들은 자신이 공부하고 싶은 것을 연구하며 배고픈 고난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영혼을 팔아 교수 밑에 들어가 연구보조원으로 혜택을 누릴 것인가 하는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다.

우수한 대학원생들을 단순히 교수의 연구보조인력으로 만들어 사실상 학문후속세대의 창의성과 독립성을 말살하는 이 같은 경향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이 같은 학문후속세대의 창의성 말살정책으로는 박근혜 대통령이 추구하는 창조경제조차도 요원할 것이다.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이 같은 연구프로젝트들이 대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일부 이공계연구의 경우 대형화가 불가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문사회계에도 이 같은 경향이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 특히 21세기는 ‘다양성’이 핵심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소수 주제 중심의 대형화는 학문의 자살행위에 다름 아니다.

문제는 이 같은 자살적 추세가 오랜 군사문화인 전시주의, 그리고 한국연구재단과 같은 담당기관의 권력욕과 행정편의주의가 만든 결과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1000억원을 가지고 선발된 1000명의 박사들에게 연 3000만원씩, 그리고 7000명의 박사과정생에게 연 1000만원씩을 지원해 연구하고 싶은 주제를 연구하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학문후속세대를 양성하는 길이지만, 이는 전시주의적인 기준에서 보면 가시적인 성과가 눈에 띄지 않고 관리도 어렵다.

그보다는 50억원짜리 프로젝트 20개로 나누어주면 가시적 결과가 눈에 띄고 관리도 쉽다. 게다가 각 대학들은 그 돈을 받기 위해 굽실거릴 것이고 집행기관은 엄청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BK21의 후속사업인 BK플러스라는 최근의 정책은 이 같은 경향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대형화 추세를 반영해 연구단을 구성하려면 상당한 교수 수를 채워야 하는 것을 의무조항으로 제시하고 있어 교수 수가 적은 서강대학교 같은 ‘강소대학’은 애당초 연구단을 구성할 수 없는 과가 태반이다.

처우개선이라는 이름하에 사실상 강사들을 학살하고 있고 학문후속세대 양성이라는 이름하에 학문후속세대의 창의성을 말살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지만 우리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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