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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담하다. 지난해 총선과정에서 불거진 부정선거 파동도 부끄럽기 짝이 없었는데 이번에 터진 이석기 파동은 더욱 그러하다. 진보를 자처해온 사람으로서 참담하기가 이를 데 없다. 사실 통합진보당을 중심으로 우리사회에 친북 내지 ‘종북’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주체사상파가 존재해 왔다는 것은 진보진영의 물을 조금이라도 먹은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번에 밝혀진 녹취록 등은 사법적 판결이 어떻게 귀결될 것인가와 상관없이 테러계획 등 그 내용이 충격적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석기 사태를 넘어서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몇 가지 명확히 해두어야 할 점이 있다. 첫째, 이석기 파동에도 불구하고 주체사상과 종북주의는 사상적으로, 정치적으로 허용돼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은 틀린 주장도 할 수 있는 자유의 보장에 있기 때문이다. 분단시절 서독은 동독을 추종하는 ‘종동독주의’ 노선을 추구한 공산당을 허용했다. 다시 말해, 주체사상과 종북주의는 국민의 선택에 의해 정치적으로 도태시켜야 하는 것이지 사법적으로 해결하려 해선 안 된다. 사실 종북주의와 주체사상에 호응하는 국민이 얼마나 되겠는가.

다만 문제는 이번 사태가 보여주듯이 국가보안법의 존재 등으로 인해 종북주의자들이 자신의 정치적 노선을 공개적으로 표명하지 못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민주당의 묻지마식 반MB야권연대와 비례대표제가 더해져 이들의 정체성에 대한 엄밀한 대중의 검증이 없이 문제의 인물들이 국회에 진출한 것이 문제이다. 따라서 오히려 국가보안법을 폐지해 종북주의자들이 떳떳하게 자신들의 입장을 밝히고 국민의 정치적 심판을 받도록 만들어서 민의에 의해 정치적으로 고사시켜야 한다. 또 민주당도 낡은 묻지마식 야권연대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한다.

 

둘째, 이와는 별개로 이번 녹취록에서 나타난 것과 같은 테러는 사법적으로 규제해야 한다. 이는 사상의 자유와는 별개의 문제이며 좌우이념을 넘어서 처벌해야 한다. 예를 들어, 노무현 정부 시절 한 극우논객이 좌파정부인 노무현 정부에 대한 사실상의 무장봉기를 선동한 바 있다. 이것이 추상적인 글에 그쳤으니 망정이지 이 같은 계획이 이번 이석기 사태처럼 조직적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논의되었다면 이는 사법적으로 처리했어야 한다.

셋째, 정작 걱정은 새누리당과 보수세력이다. 이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쾌재를 부르며 강공을 계속하고 있다. 심정은 이해되지만 유죄확정이 되지 않았는데도 이석기 의원을 국회에서 제명하고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키려고 하는 등 공안드라이브를 가속화하고 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두 가지다. 하나는 현재의 이석기를 만들어낸 것은 야권연대를 한 민주당이 아니라 새누리당이 뿌리를 둔 유신과 전두환 정권이라는 군사독재라는 사실이다. 주목할 것은 그가 1982년에 대학에 들어간 82학번이라는 점이다. 그는 80년 광주의 비극 속에서 계엄군의 진입작전을 승인해 양민학살을 방조한 미국에 대한 증오를 생생하게 체험하며 자라난 세대이다. 물론 이후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낡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그의 잘못이다. 그러나 이들 반미 주체사상파를 만들어 낸 원죄는 군사독재에 있다. 따라서 새누리당과 보수세력은 뼈아픈 반성을 해야 한다.

 

나아가 이번 사태를 기화로 국정원 개혁을 포함한 개혁과제들을 물 건너가게 하고 공안드라이브로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해 나가려 한다면 그것은 제2, 제3의 이석기를 만드는 길이다. 이석기 사태의 재발을 막는 길은 종북매카시즘이 아니다. 그 길은 철저한 개혁으로 우리 사회를 노동자들이 툭하면 분신하고 철탑에 올라가는 사회가 아니라 ‘살맛 나는 멋진 사회’로 만드는 것이다.

통합진보당도 테러 논의가 농담이었다는 식의 헛소리를 할 게 아니라 합리적인 자주파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혁신을 해야 한다. 정의당 그리고 노동당으로 이름이 바뀐 진보신당 등 주사파에 비판적인 진보세력들은 진보의 존망이 걸린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대중의 올바른 선택이다. 시대착오적인 종북주의는 신랄하게 비판하되 그것이 ‘종북매카시즘’으로 나가는 것을 막고 올바른 진보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대중의 몫이다.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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