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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6개월이 됐다. 이에 따라 여러 평가가 줄을 잇고 있다. 개인적으로 새 정부가 가장 잘한 것은 전두환 미납추징금 징수라고 생각한다. 민주 정부를 자임한 김대중, 노무현 정부조차 엄두도 내지 못한 일을 과감하게 추진하고 있는 것에 박수를 보낸다. 다음으로 잘한 것은 4대강 사업 등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대해 심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대북관계에서 일정한 성과를 얻어내고 있는 것도 평가해주고 싶다. 구체적으로, 시진핑체제 출범에 따른 중국의 대북정책 변화라는 운에 기인한 바가 크지만, 북핵문제에 대한 중국의 지원을 얻어내 북한을 고립시킴으로써 원칙을 지키면서 개성공단, 이산가족 상봉 등 대북관계에서 성과를 얻어내고 있다.


그러나 비상식적인 일방 인사, 정치권과 여론을 무시하는 불통의 정치, 국정원 사태에 대한 방관, 경제민주화의 후퇴 등 우려되는 것이 훨씬 많다. 특히 오기에 가까운 인사와 불통의 정치를 바라보면서 떠오른 것은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과 박 대통령은 너무도 다른 양 극단의 정치인이다. 노 전 대통령은 엄밀한 의미의 진보는 아니더라도 자유주의 개혁세력을 대변한다면 박 대통령은 냉전보수세력을 대변한다. 어려운 성장과정을 거친 노 전 대통령이 서민과 비주류를 대표한다면 박 대통령은 대통령의 딸로 성장한 최고엘리트 출신이다.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에 어울리지 않는 언행으로 구설수를 달고 다녔다면 박 대통령은 일찍이 퍼스트레이디 훈련을 받은 덕택에 최고의 품위와 격을 갖춘 정치인이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과 박 대통령, 그리고 지지자들이 모두 펄쩍 뛰며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두 정치인은 너무도 닮은 점이 있다. 그것은 위험한 순교자주의이다. 나는 2007년 초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현재 한국정치에는 두 명의 ‘순교자주의자’가 있다. 순교자주의란 여론 등과 상관없이 자신이 옳은 일을 위해 순교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서 종교인에게는 중요한 덕목일지 모른다. 그러나 정치인의 경우 민주화투쟁 등에 있어서 필요할 때도 있지만 민심에 반하고 틀린 것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해 무대뽀로 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할 수 있는 성향이다. 두 명은 노무현 대통령과 박근혜 의원이다. 노 대통령은 평생을 주류에 도전하며 살아온 반주류 순교자주의자이다. 특히 지역주의에 저항해 돈키호테처럼 싸워 ‘바보 노무현’이라는 아름다운 별명도 얻었다. 그러나 순교자주의가 잘못돼 이제 올바른 여론에 대해서도 ‘여론은 무시하기로 했고 역사가 내가 옳았음을 평가할 것’이라고 위험하게 나가고 있다. 박 의원 역시 순교자주의자이다. 다만 차이는 주류 중에서도 최상류 주류로 살아온 기득권수호적 순교자주의자, 반공주의 순교자주의자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내용만 반대일 뿐 위험한 순교자주의자라는 점에서는 똑같다. 박 의원은 대한민국이 노무현 정부라는 친북좌파에 의해 존폐의 위기에 처해 있으며 자신은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 순교하겠다고 믿고 있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 대선에 뛰어들었다’는 미국 방문 중 한 발언이 그 예다.”


2005년 한 정치인이 ‘고난을 벗 삼아, 진실을 등대 삼아’라는 글을 썼다는 뉴스가 올라왔다. “김근태 의원과 같은 사람이 썼나보다” 생각하고 읽어보니 박 대통령이 쓴 것이어서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부모를 모두 비극적으로 잃고 자신까지 테러를 당한 상황에서 충분히 ‘고난을 벗 삼아’ 운운할 수 있겠다고 이해가 됐다. 그러나 바로 그 같은 개인사와 생각이 정당한 비판에도 귀를 닫고 잘못된 길을 고집하는 순교자주의로 나아가게 만들 수 있다는 걱정을 했다. 특히 그 글에서 “소신을 펴나가는 과정에서 욕을 안 먹을 수 없으며 그 비난은 가슴에 다는 훈장 이상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갈 것”이라는 구절이 그러하다. 박 대통령이 역사에 남는 훌륭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역사와 대화하기에 앞서 민심과 대화해야 하며 순교자주의를 버리고 땅으로 내려와야 한다.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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