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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나니 여권의 ‘배신자’가 된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마지막 말은 “복지는 내부의 적을 만들지 않는 일”이었다. 대통령의 세 번 반려도 뿌리치고 끝내 사퇴를 관철했으니, 그게 ‘사랑의 배신’이냐 아니냐를 따질 생각은 없다. 다만 출당이니, 탈당이니 기초연금을 둘러싼 배신자 논쟁에서 그나마 가슴 언저리를 맴도는 건 그의 이 마지막 소회뿐인 것 같다. 이런 난장판을 예상 못하지는 않았을 터이기에, 그럼에도 가롯 유다의 선택을 하게 된 ‘양심’의 본질과 이면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복지를 가능하게 하고, 지탱하는 근본은 두 가지다. 돈과 약속이다.

“가장 빈곤한 계층의 후생을 증대하지 않고는 어떤 사회 개선도 기대하지 말라”(<정의론> 중)는 존 롤스의 일갈처럼 한 사회가 공동체로 존재하고 기능하기 위한 수단인 복지는 수혜자와 부담자가 확연하게 나뉘기에 공동체의 동의가 본질이다. 공동체의 동의는 “타인의 곤궁에 대한 공감만이 보편적 인권 개념을 가치있게 한다”(<유러피안 드림>)는 제레미 리프킨의 호소처럼 ‘가진 사람’들의 절제와 타인에 대한 이해의 표현이다. 따라서 돈, 즉 재정은 그 동의의 결과물이자 원인이다.

 

(경향DB)

 

어떤 면에서 여권은 참 일관성이 있다. 적어도 노인층에겐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TV토론에서 “기초노령연금을 보편적 기초연금으로 확대해 모든 어르신한테 내년부터 20만원 기초연금을 지급할 것”이라고 했다. 야당의 ‘보편적 복지’론에 “포퓰리즘식 퍼주기 복지”라며 경기(驚氣)를 일으키던 그들이지만, 유독 노인층에겐 ‘보편 복지’를 언급하며 내놓은 약속이었다. 당시 박 후보 공약은 소득 하위 80% 계층에게만 2017년까지 18만원으로 인상하는 민주당 공약보다 훨씬 급진적이었다. 의심스러웠지만, ‘원칙과 신뢰’의 박 후보 약속이니 딱히 사기라고 주장할 근거도 없었다.

이보다 앞서 이명박 전 대통령도 대선을 일주일여 앞둔 2007년 12월10일 대한노인회 주최 토론회에서 “임기 안에 기초연금을 20만원까지 올려주겠다”고 약속했다. 2008년 4월 총선을 앞두고는 아예 기초노령연금을 월 36만원으로 올리겠다고 공약했다. 물론 이명박 정부 내내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표’ 되는 노인층과만 이처럼 되풀이해 온 약속과 파기의 역사는 선거용 ‘표’퓰리즘 외엔 설명할 길이 없을 것 같다.

실상 기초연금은 국민연금 재정 문제와 깊은 인연이 있다. 2006년 파산에 직면한 국민연금 재정개혁이 기초노령연금 도입의 계기인 때문이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더 내고, 덜 받는’ 연금 개혁안을 면구스럽게 국민 앞에 내밀었다. 야당이던 한나라당은 정부 연금 개혁안을 맹비난하면서 부결시키고 대신 ‘더 내지는 않고, 덜 받기만 하는’ 불완전 개편안을 관철시켰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8일 국무회의를 열고 다시 국민연금 보험료를 현행 9%로 동결했다. 당초 14% 인상까지 검토하던 걸 백지화하고 차기 정부로 넘긴 것이다. 2060년 연금 고갈이 예상되지만 적어도 이 정부 내에 욕을 먹지는 않게 됐다. 재정 때문에 기초연금 공약을 “불가피하게 조정한다”던 그들이, 이 정부 내 벌어질 일이 아닌 국민연금 재정 위험엔 눈감은 셈이다. 결국 폭탄을 돌리다가 어느 정부는 다시 면구스럽게 훨씬 심각한 개편안을 국민들에게 내밀어야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여권은 복지의 ‘기반 원칙’ 두 가지 모두를 어겼다. 아니 기만했다. 단순히 공약 파기니 하는 논란의 수준을 넘는다. ‘집권 실격’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그래서 진 전 장관의 그 말, ‘내부의 적’은 울림이 있다. 부담층이든 수혜층이든 불만과 불신이 자라면 그 복지는 존재하기 어렵다. 복지의 종말은 공동체 신뢰의 붕괴를 의미한다. 진 전 장관이 여권 내부의 적인지, 여권이 우리 사회 내부의 적이 되고 있는 것인지.

권력이 아주 조그만 얼룩을 보여도 배반은 싹을 틔우기에, 그것은 ‘권력의 예보계’와도 같다. 결과적으로 이 정부는 첫해부터 이미 얼룩이 들고 있음을 자인하고 있는 꼴이다. 더욱이 지금 여권 핵심부가 질 낮은 배신 논쟁을 통해 느끼는 통증은 다른 뭇사람들의 배반감과 상실감에 비하면 작은 것일 수도 있다.

내부의 적을 만들어 공동체를 만인 대 만인의 검투장으로 만들면 ‘힘’ 외엔 통제할 방법이 없다. 점점 권력과 통치의 수단이 과거로 가는 듯한 지금 분위기는 그래서인가.

김광호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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