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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호환|서울대 교수·역사교육

우리 역사 속에서 국가가 성립된 이래, 후세에 대한 교육의 큰 틀은 언제나 제도적인 차원에서 그 정비가 이루어져 왔다. 후세를 가르쳐 국가의 동량으로 키우는 일은 실로 국조장구(國祚長久)를 위해 필요불가결한 과제였고, 급변하는 정세에 대응하기 위한 기본이었다.

교육의 목적은 국가와 사회를 위해 역할을 다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고 동시에 개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 교육 정책의 목적은 ‘학습부담 경감’이고, 이를 위한 제도 개혁의 결과는 공교육 부실과 학생들의 학교이탈, 그리고 체감 학습부담과 사교육비 증가로 나타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최근 교육과정상 한국사를 필수화하고 5단위(1, 2학기로 나누어 할 경우 1주당 2.5시간)를 이수하게 하는 방안이 발표됐으나, 이는 현실적으로 수능과의 연계가 없어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만만치 않다. 사실 지금도 거의 모든 고교에서 한국사를 가르치고 있고, 수업시수도 5단위 정도로 하고 있으므로, 이 조처로 크게 변할 것은 없다.

혹자는 사회과 과목 가운데 역사교과만을 필수로 지정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기도 하는데, 문제 삼아야 할 것은 사회과라는 하나의 교과군 속에 사회, 역사, 지리, 윤리에 해당하는 11과목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교육과정상 국·영·수를 제외한 교과목을 과도하게 축소·통합시켜 놓은 이러한 체제는 세계적으로 예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기형적이다. 정부가 진정으로 역사교육을 강화하고자 한다면 역사를 하나의 독립된 교과로 편성하고 수능의 선택과목 체제를 바꾸어야 한다.

출처: 경향신문 웹DB

‘과목수 축소’라는 명분 아래 현재 학교 현장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 또 하나의 사례는 올해부터 중·고등학교에서 전면 실시되고 있는 ‘집중이수제’이다. 이로 인해 고등학교의 경우 학기당 8과목 이상은 개설하지 못하게 되었고, 그 결과 일부과목의 경우 2학기에 걸쳐 1주일에 2~3시간씩 하던 것을 1학기 동안 1주일에 5시간으로 끝내게 했다.

이러한 상황은 현장에 실로 많은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전학생의 경우 미이수 또는 중복이수 교과목이 발생하는 문제와 해당 과목의 내신성적 처리다. 더구나 학생의 입장에서는 중간고사 시험범위가 교과서 절반이나 되고 보니 한국사와 같은 과목의 경우 아예 시험을 포기하려는 학생도 있다고 한다. 학습부담이 경감되는 것이 아니다. 집중이수제의 대상이 주로 사회과 과목과 예체능 과목에 집중돼 있는 점도 문제다.

논란이 많은 집중이수제에 관해 최근 교과과정평가원에서 배포한 연구보고서 내용은 더욱 놀랍다. 여기서 전학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사례를 인용해 제시한 방안은 부모가 학생을 남겨두고 이사를 가든가, 학기 시작 전에 학생만 미리 보내든가, 직장 상사와 상의하여 이주 시점을 조정하라는 것 등이었다.

지금 우리나라에 필요한 것은 ‘학습부담 경감’을 외치며 검증되지 않은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충실하고 경쟁력 있는 교육을 실천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영·수 위주로 편향되어 있는 교육과정과 수능체제를 개혁하여, 균형잡힌 교육, 내실있고 내용있는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미래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는 단순히 수학과 영어에만 숙달된 기능인이 아닌, 창의적·비판적 사고를 통해 자기 나름의 관점을 가지고 판단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민주시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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