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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근형·이호준·이청솔기자 ssun@kyunghyang.com

ㆍ(9) 토론을 막는 토론들
ㆍ중립성에 집착한 진행… 결론없이 갈등만 증폭… 시청자는 ‘불통’구경만

 

방송 3사의 대표적인 토론 프로인 KBS의 <심야토론>, MBC <100분 토론>, SBS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TV 토론은 시청자들이 현안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기계적인 찬반대립, 설득과 타협이 없는 설전과 말싸움으로 인해 언변 자랑의 볼거리로 전락해 사회적 소통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MBC <100분 토론>, KBS <심야토론>, SBS <시사토론> 등 TV 토론 프로그램은 ‘과감하고 진솔하며 역동적인 토론’을 통해 원활한 소통을 모색하는 것을 지향한다. 이를 반영하듯 TV 토론 프로그램들은 하나같이 ‘진실한 토론’ ‘고급스러운 토론’ 등을 내세우며 국민 소통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TV 토론이 의도적인 편가르기에 집착하며 소통이 아닌 불통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패널들은 주제의 본질에 천착하기보다 상대 의견에 대해 반박을 위한 반박을 하거나 말꼬리 잡기에 급급해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시청자들은 싸움구경만 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방송 3사의 대표적인 토론 프로인 KBS의 <심야토론>, MBC <100분 토론>, SBS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TV 토론은 시청자들이 현안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기계적인 찬반대립, 설득과 타협이 없는 설전과 말싸움으로 인해 언변 자랑의 볼거리로 전락해 사회적 소통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TV 토론의 문제점으로 ‘기계적 중립성에 집착’ ‘상대방의 의견은 무시하는 패널들의 일방향적인 토론 태도’ ‘원론적이며 거시적인 토론 주제’ ‘방송사의 시청률을 의식한 진행’ 등이 꼽히고 있다. TV 토론이 상호 의견 교환을 통해 접점을 찾는 생산적인 토론이 되기보다는 ‘토론을 위한 토론’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아나운서 출신인 오미영 경원대 교수는 TV 토론이 공정성과 중립성을 지나치게 의식하다보니 형식에만 얽매여 내용이 함량미달인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오 교수는 “패널 선정, 발언 순서·시간, 패널들의 화면노출 시간 등이 중립성 보장이라는 명분 아래 사전에 대부분 짜여져 사실상 각본에 의한 토론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비판했다. 오 교수는 “진정한 소통을 위한 토론이라면 형식에 구애 받지 않고 자유로운 참여가 보장돼야 하는데 TV 자체의 속성으로 인해 토론다운 토론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TV 토론이 패널들의 같은 주장만 반복하다 끝난다는 점에서 비생산적이라는 견해도 제시됐다. “여러 사람이 각각의 의견을 말하며 서로 논의한다”는 토론의 사전적 정의와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TV 토론에 출연해보면 상대방이 말하는 것과 관계 없이 ‘나는 이 얘기는 반드시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먹고 나오는 패널들이 적지 않다. 이로 인해 차이를 발견해 대안을 찾자는 토론이 아니라 자신들의 의견을 재확인하는 토론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김현주 광운대 교수도 “토론의 핵심은 자기 주장에 앞서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인데도 패널들은 준비해 온 자신의 얘기에 맞춰서만 논리를 펴다보니 논리의 근거가 빈약해지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비판했다.



토론 주제 선정과 관련된 문제점도 제기됐다. 이상돈 중앙대 교수는 “주제가 너무 거창해서 토론 내용이 시청자들의 피부에 잘 와닿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를테면 ‘정치 개혁’ ‘진보·보수 상생의 길’ 등과 같은 거대 담론에 대한 토론은 대안을 찾아나가는 합리적인 토론 방식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김현주 교수는 “교통문제와 같은 시민들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이슈들도 충분히 토론의 주제가 될 수 있고, 실용적인 얘기들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데 우리나라 토론 문화에서는 ‘별 것 아닌 문제’로 치부된다”고 밝혔다.



방송사들의 지나친 시청률 경쟁도 소통을 위한 토론을 막는 한 요인으로 분석됐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패널이 누가 나오느냐에 따라 시청률이 달라지기 때문에 방송사에서는 토론능력과는 무관하게 시청률을 보장해주는 인물을 섭외하려고 든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또 “방송사에서 시청자들이 ‘싸움구경’을 즐기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격렬한 싸움이 될 만한 주제를 선정하는 관행이 있다”고 말했다. 변철환 자유주의진보연합 공동대표는 “패널들의 배치를 원탁형식이 아닌 편을 나눠 자리에 앉힌다”며 “대립구도를 보여줘 시청자들이 싸움을 즐기게 하자는 게 방송사의 의도일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밖에 “실제 이해관계 당사자가 아닌 교수 위주로 패널이 구성된다”(변철환 대표), “패널들 자기 과시의 장으로 TV 토론이 이용되고 있다”(김종석 홍익대 교수) 등의 견해도 나왔다.



시청자들도 TV 토론 평가에 인색했다. 회사원 강선규씨(31·여)는 “TV 토론을 하면 접점이 찾아지는 게 아니라 갈등이 더 증폭되는 것 같다”며 “TV 토론에 별도 시간을 할애해서 상대방 주장의 수용 가능 여부도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생 전성호씨(23)도 “대부분의 TV 토론은 결론 없이 끝난다”며 “현실에 미치는 파급력이 거의 없기 때문에 실효성이 의심된다”고 밝혔다.

TV 토론을 제작하는 방송사 PD들도 한계를 일부 인정했다. <100분 토론>의 이영배 PD는 “토론 주제가 광범위하다는 문제의식에는 동의를 하지만 지나치게 미시적인 것도 문제”라며 “이를 기술적으로 적절히 안배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정치인들이 패널로 나올 경우 자신이 속한 정당의 당론도 있기 때문에 본인의 주장 위주로 토론을 하게 되는 어쩔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심야토론>의 최병찬 PD는 “방송사가 중립성을 기계적으로 지키려고 하는 것은 없는데 사회자들이 공정성에 대한 압박을 받는 것 같다”고 밝혔다. 또 “우리나라 토론문화에서는 상대방의 말을 인정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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