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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비정규직을 몇 년 떠돌다가 비록 2년 계약직일망정 그나마 안정된 직장에 다니던 27세의 여성이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 여성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근무시간이 지나서는 일하지 못하게 했고, 휴일도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고급차를 끌고 가족여행을 다녀온 직장 상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부서장이 바뀌자 구조조정이 시작됐습니다. 최근의 실태를 파악해보니 실제적인 정년이 46세였습니다. 상황이 이러니 30대 후반의 직원들도 전전긍긍했습니다. 하지만 정년이 보장되는 일자리로의 이직이 어디 쉬운가요?”


 그 여성의 말은 이어집니다. “결혼한 친구의 아이가 너무 예뻐서 나도 결혼해볼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지만 내 인생은 이제 끝났다며 마구 울어대는 친구 때문에 포기했어요. 몇몇 친구들은 학자금 대출도 갚지 못해 허우적대고 있어요.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보았지요.”


그 여성의 해답은 남들이 선망하는 ‘10차선 도로’가 아니라 평생 자신이 걸을 수 있는 ‘오솔길’을 이제라도 찾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여성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해주자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가 부러워했습니다.


1%를 제외한 모든 국민을 불안에 떨게 만든 총체적 난국의 이명박 정권은 이제 끝나갑니다. 진보적인 경제학자 김기원은 <한국의 진보를 비판한다>(창비)에서 “권모술수만 쓸 줄 알았지 올바른 길을 가겠다는 자세가 없는 이명박 정권” “ ‘747’(매년 7% 성장, 10년 후 4만달러 소득, 세계 7위 경제규모) 따위 장사치 수준의 헛공약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울 만큼 비전을 결여했던” 이명박은 “이상 자체가 없는 인물”이라는 냉정한 평가를 내렸습니다.


저자는 이명박 정권이 도대체 뭘 잘했는지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는 불법사찰, 국책연구원의 자율성 훼손, 마음에 들지 않는 시민단체 탄압, 방송 장악, 미네르바 구속, 용산참사, 건설업자는 살찌게 했으되 나랏돈을 탕진하고 환경파괴의 우려를 낳은 4대강사업, 감세정책, 양극화 심화, 전쟁의 위기까지 초래한 반실용적인 ‘비바람정책’ 등 이명박 정권의 실정을 일일이 열거했습니다. 이를 요약하면 민주주의 후퇴, 경제 위기의 심화, 남북관계의 파탄으로 정리됩니다.


(경향신문DB)


그렇다면 이명박 정권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표현한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10년은 어땠을까요? 저는 그것을 알아보려고 김대중 평전인 <새벽>(김택근, 사계절)을 읽었습니다. 이 책은 8년 동안 ‘김대중 글 감옥’에서 분투한 이가 정리한 평전이라 잘 읽혔습니다. 우리도 이만한 평전을 갖게 되었구나, 하는 감동도 느꼈습니다. “김대중의 삶이 산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산맥이었다”는 고백에도 공감했습니다. 특히 햇볕정책을 제대로 펼치기 위해 노태우 정부 시절 남북기본합 의서 채택을 이끌어낸 주역인 임동원이라는 인물을 영입한 대목은 감동적이었습니다. “평화통일을 말하면 그 순간부터 빨갱이가 되고, 민주화를 외치면 과격분자가 되고, 정치하겠다면 거짓말쟁이가 되는 야만의 세월을 의연히 버텨 온 그(김대중)가 바로 내 앞에 앉아 있었다”고 고백하는 임동원을 인재로 알고 끌어들인 ‘삼고초려’는 “한반도를 바꾸는 대단한 사건”이 맞습니다. 이 나라의 지도자들이 이런 사건만 저질렀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준비된 대통령으로서 김대중 대통령은 햇볕정책 하나만으로도 역사에 길이 평가받을 것입니다. 그도 2009년 2월23일의 일기에서 이명박 정권의 실정을 “반민주, 반국민경제, 반통일”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1년밖에 지나지 않은 정권의 말로를 정확하게 내다본 역대 최고의 경륜을 지닌 정치인의 혜안이 돋보입니다.


그러나 작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죽는 사람은 있어도 산에 걸려 죽은 사람은 아직 없습니다. 품은 이상이 아무리 높고 커도 결국은 사소한 사건에 걸려 넘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정치인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걸어다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김대중 대통령의 측근비리와 가족비리라는 돌부리가 결국은 거대한 산의 존재를 잊게 만드는 것 아니겠습니까?


<한국의 진보를 비판한다>는 노무현 정권과 개혁진보진영에 대한 쓴소리를 마음껏 늘어놓고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 책입니다. 열정과 감동으로 치면 노무현 대통령만 한 인물이 어디 있을까요? 하지만 대연정 제안과 기자실 파동, 대북송금 특검 수용, 이라크 파병, 한·미 FTA 추진, 인사정책의 부실 등은 결국 그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저자는 노무현 정권의 정치력 부재는 ‘선거시기’와 ‘통치시기’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한 잘못이 크다고 말합니다. 


김대중과 노무현의 산은 높았습니다. 그들의 꿈과 이상을 어찌 “이상 자체가 없는” 이명박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들이 산이 아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이명박이라는 치욕적인 역주행을 낳았습니다. 그 바람에 이 땅의 젊은이들을 비롯한 모든 세대가 “고단함, 억울함, 불안함”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분명한 사실을 집권을 꿈꾸는 진보진영이 명심, 또 명심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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