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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수는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이다. 통기타 문화가 막 발아하던 시절, 모두가 외국 팝을 부르거나 가사를 번안해 노래하던 때 미국에서 돌아온 스무 살 청년은 ‘행복의 나라로’ ‘물 좀 주소’ 같은 자작곡을 불렀다. 한국 최초의 싱어송라이터였다. 비슷한 시기에 발매된 김민기의 데뷔 앨범과 더불어 통기타 문화는 여기에서 청년 문화로 발전했다.

나이를 먹어도 그는 ‘어른’보다는 ‘영원한 히피’에 가깝다. 그는 사인에 언제나 ‘peace(평화)’라는 단어를 넣는다. 모든 공연에서도 평화를 이야기한다. 어디에도 속박되지 않고 자유롭다. 그의 음악을, 인생을 보면 자유로부터조차 자유롭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한대수를 위한 트리뷰트 앨범이 나왔다. 앨범과 더불어 가사와 그에 얽힌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사랑은 사랑, 인생은 인생>도 냈다.

가수 한대수 (출처 : 경향DB)


지난 8일 열린 앨범 및 책 발간 기자회견에서 한대수는 신곡 ‘내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 앨범에 신곡이 들어가야 한다고 해서 옛날 노트를 뒤졌다”며 설명을 시작했다.

미국에서 갓 귀국한 후 종로의 음악다방에서 공연을 시작한 한대수를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1960년대 후반의 서울, 아무리 젊은 세대라도 그의 긴 머리와 히피 스타일의 차림새에 익숙할 수는 없을 때였다.

그런 그를 좋아하는 여자가 있었다. 그 음악다방의 DJ였다. 음악에 대한 호감은 자연스레 인간에 대한 연정으로 이어졌다. 그녀는 한대수의 하숙방에 와서 살림도 도맡았던 모양이다. 단벌 신사였던 한대수의 바지를 빨래 방망이로 두들겨 빠는 모습을 보며 20대 초반의 한대수는 ‘내 사랑은 꿈같이 내 옷 빨아주지요’로 시작되는 노래를 썼다.

하지만 이 노래는 한 번도 녹음된 적이 없다. 곡은 미완성 상태로 누렇게 변해가는 노트 속에서 40년을 머물러 있었다. “가사를 다시 보니 너무 민망하더라고요.” 한대수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한대수의 미발표곡을 포함, ‘행복의 나라’ ‘물 좀 주소’ ‘바람과 나’ 등 대표곡 13곡이 담긴 <Rebirth>는 여러 면에서 기념할 만하다.

애초에 기획 자체가 음반 제작사에 의해 시작된 게 아니다. CBS <라디오 3.0>에서 라디오 실험으로 1974년 발표된 한대수 1집 40주년을 기념해 새로운 음반을 만들기로 했다. 지난해 5월 시작된 이 기획은 제작 전 과정을 생중계했다. 방송뿐만 아니라 SNS를 통해 청취자들과 소통하며 진행된 이 기획은 11월까지 이어졌고, 소셜펀딩과 팬클럽의 후원으로 제작비를 마련했다. 한대수 3집 <무한대>에 기타 세션으로 참여했던 손무현 성신여대 교수가 프로듀서를 맡았고, 자신의 제자들로 밴드를 꾸려 사운드의 기반을 닦았다.

한국 최초의 싱어송라이터이자 한국 대중음악에 ‘사랑과 평화’로 요약되는 1960년대 히피 정신을 불어넣었던 이 위대한 선배를 위해 후배들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모였다. <Rebirth>에 참여한 음악가들의 면면은 화려함을 넘어 한국 대중음악의 계보를 보여준다. ‘쎄씨봉’ 시절부터 그의 친구였던 조영남이 에코브릿지가 편곡한 ‘바람과 나’를 불렀다. YB는 ‘행복의 나라’를 동시대적 포크 록 사운드로 들려주고 이현도는 ‘물 좀 주소’를 일렉트로니카로 재창조했다. 전인권이 ‘자유의 길’을, 강산에가 ‘옥의 슬픔’을 원곡 이상으로 뽑아낸다. 호란과 이상은도 각각 ‘그대’와 ‘One Day 나 혼자’를 여성의 목소리로 흘려 보낸다. 한대수는 그들의 사이에서 40년 동안 발효된 굵직하고 흐트러진 육성을 입힌다. 여느 리메이크, 혹은 트리뷰트 앨범들에 비해 전체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보인다. 이 한국 대중음악사의 거장에 대한 진정한 존중과 원곡에 대한 이해, 그리고 탁월한 해석이 어우러진다. 한대수 또한 팔짱 끼고 근엄하게 인사를 받는 대신, 그들과 함께 논다. 과연 영원한 청춘이요 히피다.

우리 음악계에는 많은 어른들이 있지만 한대수 같은 이는 극히 드물다. 스스로 권위의 벽을 세우거나 존경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그 자리에 격없이 머물며 자연스러운 권위와 존경을 만들 뿐이다. 그런 사람이 한대수와 김창완을 빼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Rebirth>의 높은 완성도는 한대수의 곡이 동시대의 문법으로 충분히 자연스럽게 소화될 수 있다는 증거이자, 그가 음악계에 몸담아온 시간 동안 마주쳤던 이들이 그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인증서다.


김작가 |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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