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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기 수업이 끝났다. 학교에서의 강의가 이전 같지 않다고 느꼈다. 최근에 와서 그런 기미가 더욱 강해졌다. 학생들의 수업에 대한 집중도나 열의를 찾기가 어렵고 대신 권태로움과 무료함이 무겁게 내리 누르고 있어서 난감했다. 

무엇보다도 앞날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 현재의 시간을 압도하고 있으며 오지 않은 미래의 시간을 앞당겨 지금의 시간을 죽이고 있다는 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현재의 시간을 사는 게 아니라 없는 시간을 사는 것이고 결국 지금은 사라진 이상한 시간대에 머물고 있는 셈이다. 현재의 시간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이들은 결국 정신병자들이거나 유령들이다. 대다수 학생들은 그 어떤 것에도 흥미를 갖고 있지 못하며 따라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표정들을 짓고 앉아서 시간을 죽이고 있거나 자고 있다.

중·고등학교까지의 생활이란 게 오로지 대학에 입학하는 것에만 설정되어 있기에 정작 그 목표가 달성된 순간 아이들은 맥없이 풀려나버린 존재가 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격렬하게 맴돈다. 

그 어떤 목표도 죄다 사라져버린 공황 상태에 빠져든 것이다. 스스로 자신이 열정적으로 하고 싶은 것을 적극 찾아나가는 것에 대해 배운 적이 전혀 없고 그런 습관 또한 몸에 배지 않은 아이들은 그저 수동적인 존재로 굳어져 버렸다. 

그러니 이들이 대학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열렬히 찾아나가며 스스로 공부하는 자세를 갖기는 지난한 일이 되어버렸다.

더구나 이명박, 박근혜 정부 들어 오로지 취업률과 성과 위주로 대학평가가 강제되는 상황에서 예술대학은 그야말로 풍비박산이 되었다. 현재 지방의 미술대학들은 거의 사라져버렸거나 디자인과에 수렴되거나 혹은 문화산업적이고 경영학적인 냄새를 짙게 풍기는 묘한 이름으로 겨우 살아남고 있는 형국이다. 진정으로 아티스트가 되고자 하는 학생들이 갈 만한 대학 자체가 드물고 정작 들어와도 워낙에 취업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극대화하는 터에 극심한 공포에 시달리면서 지레 전공을 포기하거나 타 전공을 기웃거리면서 스펙을 쌓도록 부추기는 현실에 종속되고 있는 지경이다.

학생들이 대학에서의 전공을 선택하는 것은 결국 부모들의 선택이기도 하다. 학부모들 자체가 우리 사회 현실이 요구하는 삶의 논리에 길들여져 있고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무서운 불안과 공포를 지니고 있기에 아이들에게 권하는 전공이란 결국 안정적이라고 여겨지는, 돈벌이가 된다고 막연하게 생각되는 전공만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는 안이한 소시민적 삶에 한정 없이 굴복시키는 생의 논리를 내재화한다. 그러니 미술대학 자체를 외면할 것이다. 혹 미술대학에 보내는 경우에도 디자인이나 취업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전공으로 제한하려 든다. 

그러한 부모의 인식에 따라 전공을 선택한 아이들, 4년제 대학은 나와야 한다는 강박에 따라 점수에 맞춰 들어온 아이들 혹은 전공 불문하고 어떤 식으로든 들어온 아이들에게 대학에서의 전공이란 자신의 소질, 생의 의미와는 전혀 무관한 것으로 겉돈다. 그러니 학교생활과 수업 역시 매번 미끄러질 뿐이다. 따라서 이런 학생들이 졸업을 해서 미술계로 나가 좋은 작가가 될 확률은 거의 없다. 아니 미술대학에서의 생활 자체가 무의미하다.

한편 미술대학에 와서 작업을 하겠다는 학생들은 좋은 작품을 하는 작가가 되는 게 목표여야 한다. 그런데 그것을 도대체 어떻게 취업률로 환원할 수 있을까? 이것은 너무 이상한 논리가 아닌가? 

올 한 해 수많은 아트페어를 보았고 적지 않은 전시를 봤지만 눈에 띄는 좋은 작가를 만나기는 어려웠다. 좋은 전시도 극히 드물었다. 아트페어에 참여한 그 많은 작가들은 시장에서 팔리는 몇몇 작가들의 작품들을 노골적으로 베끼느라 엉망진창이었다. 한 작가의 미술에 대한 생각, 그만의 감각, 감수성과 고유한 그림의 맛이 논의되는 게 아니라 그저 시장에서 얼마나 팔리느냐 라는 정량적 평가가 작가 작품의 질을 압도하는 형국이 빚은 참사다. 이는 결국 대학에서, 아니 그 이전부터 자신만의 고유한 시선과 마음으로 사물과 세계를 보고 이를 애써 자기 식으로 표현해내면서 열정적으로 살아오는 대신에 정답 같다고 여겨지는 것을 슬쩍 간편하게 차용해서 교묘하게 자기 것으로 포장하고, 작업하는 일 역시 상품제작행위와 동일한 것으로 여기는 비즈니스적 마인드로 미술을 대하는 태도에서 불거져 나온 왜상에 다름 아니다. 

그러니 오늘날 한국 화단이 빚고 있는 이 온갖 병리적 현상의 기원은 이미 우리의 교육제도 안에 깊게 자리를 틀고 있는 셈이자 더불어 학부모들이 지닌 비겁한 생의 논리로 인해서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박영택 경기대 교수·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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