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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마음이 기우는 문장들이 있다. 아직 다 읽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가슴이 저리고 아끼고 아껴 읽어야 했는데 너무 빨리 읽어버린 것 같아 속상하고 다 읽은 뒤에도 다 읽었다고 말할 수 없는 문장들이 있다. 별것 아닌 듯한 이 문장을 완성하기 위해 글쓴이가 얼마나 오래 머뭇거렸는지를 느낄 수 있는 그런 문장들에 나는 유독 마음이 기울곤 한다.
세월호 선체조사에서도 끝내 유해를 찾지 못한 미수습자 고 권재근씨와 혁규군 부자의 안치식이 열린 20일 오전 인천시 부평구 인천가족공원 내 화장시설인 승화원에 혁규군의 영정과 관이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아무리 오랜 세월 되풀이해서 쓴다한들 결코 완전하게 표현할 수 없으리라는 절망으로 써 온 문장들이 내게도 있다. 그 문장들은 대부분 할머니에 대한 것들이었다. 할머니는 내가 아홉 살일 때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의 죽음이야말로 진실로 내가 겪었다고 할 법한 최초의 죽음이었다. 그보다 몇해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인간의 죽음이라는 무시무시한 관념이 내 심중에 자리 잡았던 게 바로 그때여서였다. 그렇게 된 이유도 따지고 보면 내게 있었다. 아홉 살이 되던 그해 들머리, 아직 겨울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중이었다. 할머니는 지난 세밑부터 내내 윗방 아랫목에 자리보전을 한 채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아버지는 하루에 한 번씩 할머니의 가느다란 팔뚝에 링거 주삿바늘을 꽂았고 마당에 쌓여가던 눈보다 희디흰 머리칼 몇 오라기가 할머니의 이마에 들러붙은 채 떨어질 줄을 몰랐다. 가끔 정신을 차린 할머니는 당신이 왜 여태 죽지 않고 살아 있는지 모르겠다는 눈빛이었고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런 할머니가 무서웠다. 내게 가장 살가웠던 한 사람이 죽어간다는 사실이 무서웠고 그냥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낯설고 두려웠다. 어느 날 밤 할머니의 임종이 가까워서 그랬는지 부모님은 나를 아랫집으로 보냈다. 밤이 깊었고 아랫집 육촌 형제들이 너희 할머니 곧 돌아가실 것 같으니 집으로 올라가보라고 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의 곡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나는 아랫집 육촌 형제들의 방에서 자다 깨다를 되풀이하다 다음 날 아침에야 집으로 갔다. 병풍으로 가려진 탓에 돌아가신 할머니를 볼 수는 없었다. 초상을 치르는 동안 나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모른다는 태도를 유지했고 출상하던 날에도 마을 입구에서 걸음을 멈춘 채 멀어져가는 상여를 눈으로만 배웅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무수한 문장을 썼고 아무리 쓰고 또 써도 그 마음을 문장에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는 사실 탓에 비참한 기분에서 헤어나질 못했다. 죽음을 직시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며 스스로를 달래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오랜 세월 할머니를 글로 쓰면서 깨달은 것 가운데 하나는 비록 어린 소년에 불과했다 해도 내가 만약 그때 할머니 곁에서 임종을 지켰더라면, 죽어가는 할머니의 손을 어루만져 보았더라면, 당신 이마에 들러붙은 머리칼을 떼어줬더라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다며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대신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면서 한바탕 서럽게 울었더라면 이토록 쓸모없는 문장들을 아프도록 되풀이하여 쓰는 일에서 오래전에 놓여났을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얼마 전 세월호 희생자 가운데 미수습자 5인의 유족들이 유해 수색을 포기하고 장례를 치렀다. 아마도 그이들은 죽은 이의 낯을 한 번만이라도 쓸어보고 싶었으리라. 죽은 이의 차가운 두 손을 어루만져보고도 싶었으리라. 얼마나 외로웠냐고 얼마나 무서웠냐고 이제 그만 외로워하라고 이제 그만 무서워하라고 죽은 이의 귀에 대고 속삭여주고 싶었으리라. 이제 그이들은 허공에 손을 내밀어 허공을 쓰다듬어야 하고 허공을 어루만져야 하고 허공에 대고 속삭여야 하리라. 허공이란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공간이므로 한평생 그래야 하리라. 바람만 불어도 허공에 속삭인 말은 흩어질 것이므로 바람보다 먼저 속삭이고 바람보다 오래 속삭이고 바람보다 빨리 울고, 바람보다, 언제나 바람보다.
<소설가 손홍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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