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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홍대 앞에는 카페 붐이 불었다. 그 전까지 클럽이 주도하던 이 동네에 카페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건 이 ‘밤의 거리’의 낮이 살아난다는 걸 의미했다. 상수역 인근의 비하인드, 홍대와 신촌 중간쯤의 이리카페가 양대 축이었다. 이리카페의 운영진은 음악인과 미술가였다. 둘 다 시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주변의 예술가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들었다. 하루종일 글을 쓰는 사람도 있었고, 기타 연습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많은 문화적 미팅과 프로젝트가 이리카페에서 열렸다. 자연스럽게 공연과 전시가 이뤄졌다. 카페가 단순히 차를 마시고 사람을 만나는 공간의 개념에서 라이브 클럽과 갤러리, 소극장의 기능까지 겸하게 된 건 이리카페의 역할이 컸다.
황량했던 이 거리가 이리카페로 인해 하나둘씩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됐다. 주변 상권이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신축 건물의 지하임에도 사람들이 쏠쏠하게 드는 이 공간이, 건물주는 꽤 마음에 들었나 보다. 2009년 여름, 조카가 카페를 하고 싶다며 이리카페를 내보냈다. 짐도 제대로 못 건지고 이리카페는 상수동으로 옮겼다. 아직 상수동 상권이 발달하기 전이었다. 아니,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은 수십 곳의 카페와 술집이 있는 이 골목의 1층은 신문배달지국, 양장점, 피아노학원 등이 차지하고 있었다. 불과 몇 십 걸음만 걸으면 불야성의 땅이 있다는 생각도 할 수 없는 한적한 골목으로 이리카페가 옮겼다. 단골들도 함께 옮겼다. 시낭송회가 열리고 가극과 실내악 공연도 열렸고 전시와 상영회도 열렸다. 서교동 시절과 마찬가지로 상수동 시절도 이리카페로 인하여 멈춰진 골목에 시간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지금은 이 골목도 다른 범홍대권과 마찬가지로 포화상태가 됐다.
LK:북 카페 '이리카페'의 직원들이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제작한 그림_경향DB
문화를 찾아 사람들이 다니고, 소문을 듣고 인파가 몰리는 곳엔 어디나 마찬가지로 이 골목에도 자본은 이빨을 드러낸다. 홍대 카페 역사의 중요한 한 축이자, 카페의 살롱화에 핵심 역할을 해온 이리카페 역시 그 공격에 예외는 아니다. 또 한 번, 이리카페는 쫓겨날 운명에 처했다. 보증금 2000만원에 월 235만원이었던 임대료가 385만원으로 훌쩍 올랐다. 운영진이 인건비를 못 가져간 지 몇 달째다. 그래도 버텼다. 이번에는 건물주가 바뀌었다. 그렇게 되면, 아예 쫓겨나거나 다시 한번 임대료 급등의 위협에 처하게 된다. 만에 하나 새로운 건물주가 선의를 갖고 있더라도 현실은 녹록지 않다. 수십억원을 주고 산 건물이다. 금융 이자도 만만치 않다. 이 상황에서 돈 대신 문화를 택할 이가 얼마나 있을까.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게 합법이라는 거다. 옛날 지주와 소작농들의 착취와 분쟁 대부분이 제도 안에서 일어난 일이듯 오늘날 건물주와 세입자 간의 착취와 분쟁도 마찬가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젠트리피케이션이라 쓰고 자본의 폭력이라 읽을 수 있는 이 현상에 대한 일반의 시선이다. 이태원 테이크아웃 드로잉 사태가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했을 무렵 많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건물주인 싸이의 편을 드는 사람이 많았다. 세상에, 한국에 건물주가 이렇게 많았나 싶었다. 합법인데 뭐가 문제냐는 논리였다. 을의 횡포 운운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른바 진보적 커뮤티니에서조차 그랬다. 정치적 감각과 경제적 감각의 괴리를 실감했다. 이런 무의식적 동조 속에서 오늘도 거리를 만든 문화적 공간은 쫓겨날 위험에 처해 있다. 심지어 아직 아무 상권도 없는 한남동 우사단길에서 열리는 계단장은 무기한 휴장을 결정했다. 계단장으로 인해 조만간 이 동네가 뜰 것이라 기대하고 벌써부터 부동산 장난을 치는 투기세력 때문이다.
홍대앞이 지금 같은 막장으로 치닫기 전, 그러니까 이리카페가 개업하던 2004년 일이 떠오른다. 집을 구하러 부동산중개소에 들어갔다가 내가 홍대앞에 대해서 쓴 기사가 붙어 있는 것을 봤다. 그때 깨달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문화로 만들어진 거리를 부동산이란 이름의, 탐욕스러운 자본이 파괴할 거라는 걸.
김작가 |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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