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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은 두 개의 ‘AI’ 시대가 교차하는 시간이다.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과 조류인플루엔자(Avian Influenza).

 

인공지능이 인간지능과 겨루고 우주를 탐험하는 시대에, 인류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고 작은 바이러스 하나 이겨내지 못해 중세시대 흑사병에 준하는 난리를 겪고 있다. 매일 수만, 수십만 생명을 땅에 묻는 대학살을 저지르고 있다. 닭, 오리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전이되어 대규모로 퍼질까 벌벌 떨고 있다. 문을 겹겹으로 닫고 방역을 해도 전염병 확산을 막지 못하고 있다.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해답을 알려면, 원인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인류는 수백만년 동안 지구상에 존재하면서 전염병을 겪지 않았다. 아무도 홍역, 천연두, 독감에 걸리지 않았다. 1만년 전까지는 말이다. 그렇다면, 1만년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인류는 야생동물을 붙잡아 가축화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의학 인류학자들은 인류 진화의 시작으로부터 질병의 3개 주요 시기를 확인했다. 첫 번째 시기는 야생동물을 가축화한 1만년 전. 야생에서 살던 동물들을 소유하고 길들이기 시작하면서 질병도 같이 들어왔다. 소와 양을 가축화할 때 홍역 바이러스를 같이 들여왔다. 천연두는 낙타에서 왔다. 백일해는 야생 돼지를 가축으로 만들면서 얻게 됐다. 닭을 가축화하면서 장티푸스를 얻었고, 오리를 가축화하면서 독감에 걸렸다. 나병은 물소에서, 일반감기는 말에서 왔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명저 <총, 균, 쇠>는 질문한다. 북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유럽인이 왜 원주민의 질병에 당하지 않고 어째서 유럽인의 질병으로 원주민 95%가 죽었는가. 유럽인이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하기 전에 가축화된 버펄로는 없었고 따라서 홍역도 없었다. 돼지가 없으니까 백일해도 없었고, 닭이 없으니까 장티푸스도 없었다. 반면 유럽인은 야생동물 가축화로 이런 질병들을 얻었고, 수백만명이 죽었고, 아메리카 대륙 침략으로 이 질병들을 퍼뜨렸다.

 

두 번째로 찾아온 인류 질병의 큰 시기는 18세기와 19세기 산업혁명으로 시작됐다. 당뇨, 비만, 심장병, 암 등 ‘문병의 질병’이라 불리는 질병들이 만연하게 됐다. 하지만 적어도 전염병만큼은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끝났다고 생각했다. 페니실린 덕분이다. 소아마비와 천연두를 박멸했다. 전염병을 상대로 한 전쟁은 승리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전염병 추세는 최근 다시 반전된다. 1975년 즈음 전염병으로 죽는 사람의 수가 다시 증가한다. 과거의 전염병과는 또 다른 전염병이었다. 30년 만에 30개 이상의 새로운 바이러스가 발견됐다. 미국 의학 연구소는 이를 ‘미생물 위협의 대재앙’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지금 불과 30여년 전에 시작된, 인류 질병의 3기 시대를 맞고 있다. 최근 무엇이 변해 이런 상황을 맞게 된 것일까?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을 막기 위해 전국 가금류 관련 사람·차량·물품 등을 대상으로 이틀간 이동중지(스탠드 스틸) 명령이 발령된 13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한국양계농협 경기광주집하장 계란 저장고가 적정 재고의 10% 수준으로 비어 있다. 연합뉴스

 

21세기 전염병의 원인을 파헤치기 위해 세계보건기구(WHO), 식량농업기구(FAO), 유엔, 그리고 국제수역사무국(OIE)이 함께 머리를 맞댔다. 그 결과 이 신종질병을 출현하게 하고 전파하게 하는 원인을 찾아냈다.

 

외래종을 애완동물로 삼기 위한 밀반입 무역, 그리고 야생동물을 잡아먹는 행위가 원인으로 밝혀졌는데, 그보다 가장 중요하게 다룬 것은 전 세계에 걸쳐 동물단백질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문제였다. 고기를 많이 먹는 것, 그리고 그를 가능케 하는 공장식 축산이 ‘미생물 대재앙’의 원인이라 규명된 것이다.

 

육식과 사육이 문제라고? 인간은 이미 선사시대부터 다른 동물을 길들이고 먹어오지 않았는가? 뭐가 문제인가? 그렇다. 인류는 1만년 전에 비인간 동물을 가축화했다. 그러나 인간은 동물을 지금처럼 대하지 않았다. 닭들은 마당과 뒤뜰에서 햇빛을 받으며 뛰어다녔고 부리를 땅바닥에 쪼았다.

 

현재 고기를 위해 길러지는 닭들은 햇빛이 닿지 않는 밀폐된 축사 안에 수십만마리가 수용돼 밀집 사육되고 있다. 세계의 질병 전문가들은 오늘날의 공장식 축산이 고병원성 바이러스의 온상이며, 강력한 전파자 역할을 하고 있음을 한결같이 증명하고 있다. 에이즈의 원인인 HIV 바이러스가 체액으로 전파되는 것과 다르게, 인플루엔자는 호흡기를 통해 전파되며 몇 달 만에 인류의 절반을 감염시킬 수 있는 병원체로 간주된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의 원인은 공장식 축산의 세계화, 육류 소비의 증가에 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진화 전문가인 얼 브라운은 “고밀도 닭 사육은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진화를 위한 완벽한 환경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 방사 사육되는 닭, 또는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농장의 닭들은 AI로부터 무사하다. 자외선과 햇빛은 바이러스를 없애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햇빛에 직접 30분만 쏘이면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는 완전히 활동을 멈추지만 그늘에서는 며칠간 지속될 수 있고, 습기를 머금은 거름에서는 몇 주도 버틴다.

 

이번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는 역대 최악의 재해로 번지고 있다. 최초 발생 이후 한 달이 채 안되는 12월15일 현재까지 무려 1400만마리의 닭, 오리 등이 살처분됐다.

 

2014년에는 100여일에 걸쳐 1400만마리가 도살 처분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올해는 역대 최단기간 최대피해를 입어 기록을 경신했다. 이 엄청난 전염병을 살처분과 소독으로 막을 수 있을 리 만무하다. 문제는 공장식 축산이다. 대체 얼마나 더 말해야 이 위험을 인식할 것이며, 얼마나 더 경고해야 똑같은 학살을 중단할 것인가.

 

황윤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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