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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4) 금융위기에 접속된 나…안산의 고대영씨와 LA의 루세로
유희진 기자


ㆍ경기 안산시 성포동의 한 도로변. 고대영씨가 운영하는 동물병원은 한적하고 조용한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미미, 앉아! 앉아!”


정적을 깨는 다급한 한 중년 남성의 목소리. 주인을 찾으며 사납게 짖어대는 강아지 한 마리를 잠재우기 위해 고대영씨(40)는 끙끙대고 있었다. 10분간의 실랑이 끝에 겨우 강아지를 치료하고 나서야 고씨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재테크요? 그저 가진 돈을 안정적으로 꾸려가고 싶었습니다. 펀드 같은 건 쳐다보지도 않았어요.”



5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에 병원 분점도 낼 정도로 의욕적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사업 확장에 부담을 느꼈다. 욕심 부리다가 화를 부를까 꺼려졌다.

고씨의 병원에서 불과 몇 분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우리은행이 있었다. 평소 거래가 있던 은행은 고씨에게 여유 자금이 있다는 것을 알고 빈번하게 그에게 ‘우리파워인컴’ 펀드에 가입할 것을 권했다.

“원금을 잃을 가능성이 대한민국이 부도날 확률과 비슷하다고 하니까 솔깃했죠. 예금과 같이 한달에 한번 꼬박 꼬박 이자도 나온다고 했어요. 제가 자꾸 의심하면서 이것 저것 캐물으니까 은행에서는 쉽게 설명하겠다며 '은행 예금이나 다름없다'고 설명을 하더군요.”

그가 우리파워인컴의 가입 서류에 사인할 때까지 그는 은행원으로부터 '펀드'란 말은 단 한번도 듣지 못했다.






# 2005년 11월18일 고씨, 세계 금융 게임에 접속


‘은행 예금’이라는 말은 결정적이었다. 고씨는 가입 서류를 작성한 뒤 가지고 있던 돈 4500만원을 ‘우리파워인컴’ 펀드에 넣었다. 2005년 11월18일. 가입 신청서 사인으로 그는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세계 금융의 위험한 게임에 편입된 것이다. 그가 이 게임에 접속한 곳은 안산 성포동의 우리은행 지점.


“왜 나 같은 사람이 미국의 모기지 업체가 망한다는 소식에 가슴을 쓸어내려야 합니까?” 그가 펀드에 가입한 후 3년.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그는 자신도 모르게 촘촘하게 짜여진 세계 금융의 네트워크와 연결되었고, 그 촉수는 태평양 건너 미국의 한 서민과도 닿아 있었다.


 
# 2004년 8월 루세로, 집을 사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 살던 루세로는 동네에 있는 주택담보대출 은행을 통해 담보 맡긴 집값의 100%를 대출받았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루세로에게 사려는 집의 가치를 전액 빌려주다니. 그러나 은행은 자신 있었다. 집값은 계속 오를 것이기 때문에 빚진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은행이 루세로 같은 사람들에게 돈을 대출해준 후 “루세로에게 돈을 빌려줬다”는 차용증서를 바탕으로 대출 채권을 만들면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은 이 채권을 사갔다.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은 미국 정부가 보증을 서는 준정부기관이다. 은행으로서는 안정성을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은행은 두 국책 모기지기관에 채권을 팔고나면 다시 자금이 생겼다. 그 돈으로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신규 대출을 해줬다. 예상대로 집값이 올랐고, 오른 만큼 대출 채권의 가격도 올랐다.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은행의 주택담보 대출은 계속됐다.
 


# 루세로의 부채, 국책 모기지기관으로 유입


루세로의 빚진 돈은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서도 유용하게 쓰였다. 두 모기지기관은 은행과 모기지 대출업체들로부터 산 주택담보대출 채권 자산을 담보로 잡아 이것을 주식시장에서 팔 수 있도록 증권으로 만들었다. 루세로처럼 집을 사기 위해 대출받은 것만을 모아 담보로 잡은 후 발행한 증권이 ‘거주용 담보부증권(RMBS)’이다. 루세로가 돈을 빌려간 사실을 일종의 무형의 재산적 가치로 평가해 그 재산에 대한 권리를 증서로 표시한 것이다. 프레디맥과 패니메이가 자금을 융통하는 방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RMBS를 가지고 또 한번의 게임판을 벌인다. 이번엔 자신들이 발행한 증서 RMBS를 담보로 잡고 또 다시 증권을 발행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채담보부증권(CDO)이다. 빚을 채권으로 만들고, 그 채권을 주식시장 거래가 가능한 증권으로 만들고, 그 증권을 담보로 또다른 증권을 만드는 빚잔치의 릴레이였다.

CDO를 만들 때 패니메이는 고민을 한다. 돈을 못갚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의 대출로 증권을 만들었기 때문에 제 값을 못받을 것에 대한 우려였다. 그래서 이들은 마술을 부린다. 안전한 자산과 다소 위험성이 있는 자산, 매우 위험한 자산을 약 7 대 2 대 1 비율로 섞어 하나의 증권을 만든 것이다. 이 증권에는 루세로와 같은 개인뿐만 아니라 탄탄한 기업들의 담보 대출까지 다 섞여 들어갔다. 아무도 사려 하지 않았던 불량 채권들은 우량 채권들 틈에 숨어 모습을 감췄다. CDO는 여러 새들의 화려한 깃털들로 자신의 본 모습을 감춘 까마귀의 모습이었다. 여기에 'MBIA'나 '암박'과 같은 채권보증업체(모노라인)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들은 패니메이가 지급 능력이 없을 때 그것을 대신 갚아주는 보증 회사다. 이렇게 보증업체들이 보증까지 서면 패니메이가 발행한 증권은 신용등급이 올라갔다.

이렇게 루세로가 돈을 빌려갔다는 그 무형의 가치는 RMBS로 멋지게 그 형태를 바꾸고, 나아가 CDO로 섞여 우량 기업들의 대출 속으로 숨었다. 그리고 좋은 등급을 받았다. 루세로의 무리하게 빌린 돈의 실체는 이렇게 잠시 모두의 머리 속에서 잊혀졌다.

# 루세로의 부채, 세계 금융 엘리트들의 손에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들은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서 만든 RMBS와 CDO상품의 1등 구매자였다. 세계 금융 천재들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이것을 가만히 둘 리가 없었다. 월가 투자은행들은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서 사들인 파생상품 이외에도 이렇게 채권을 증권으로 만드는 유동화회사로부터 파생상품을 사들인다. 그리고 다시 한번 루세로의 빚의 존재를 더 확실히 감추기 위해 다른 상품들과 섞은 후에 다시 한 덩어리로 만들어 쪼갰다. 루세로가 대출을 받은 은행에서부터 월가의 투자은행에 도달하기까지 '돈을 빌렸다는 사실'은 이렇게 무한증식하는 과정을 거쳐 '파생상품'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달고 재탄생했다.

월가 투자은행들은 모기지 관련 파생상품들을 팔기 위해 여러 수법을 동원한다. 그중의 하나가 이름만 있는 종이회사를 세워 자산 일부를 이 종이회사에 떠넘기는 것이다. 이렇게 별도 회사를 세워 거래를 하면 모(母)회사의 대차대조표에는 표시되지 않는 장외거래가 가능하다. 설사 이 종이회사를 통한 거래가 부도가 나도 모회사는 안전하다. 월가의 투자은행들은 부실 위험이 높은 ‘위험 상품’을 취급할 때 주로 이런 종이회사를 만드는 방법을 이용했다.

월가의 한 투자은행은 ‘CEDO Plc’라는 종이회사를 만들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서 발행한 주택담보대출 관련 합성 CDO의 한 종류인 자산부채담보부증권(CEDO)을 발행한다. CEDO는 채권의 신용위험에 따라서만 수익률이 결정되는 CDO와 달리 신용도에 주가지수 영향까지 받는다. 주가지수를 수익률과 연동한 주가연계증권(ELS) 형태를 띠고 있다. 즉 상장된 주식이 폭락하면 꼼짝 없이 수익률도 하락한다. 원금은 당연히 보장되지 않는다. 루세로의 빚은 이렇게 금융 연금술사들에 의해 CEDO라는 이름으로 또 한번 위장된다.


 

# 2005년 11월 안산의 고대영씨와 LA의 루세로 만나다


LA에 사는 루세로의 빚이 CEDO로 변모되기까지의 과정은 안산에서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고대영씨와는 전혀 무관해 보였다. 그러나 고씨의 돈도 결국 CEDO로 흘러들어갔다.

우리은행을 통해 들어간 고씨의 투자금은 우리은행의 자회사인 우리CS자산운용이 자금 운용을 맡았다. 그리고 우리CS자산운용은 투자 경험이 많은 크레디트 스위스 증권사의 자회사인 투자은행 CDFB에 이 자금의 운용을 위탁한다. CDFB는 우리파워인컴에 투자된 돈을 모아 월가의 파생상품인 CEDO에 70%를 투자했다. 안산에서 고씨가 힘들게 번 돈과 미국에서 루세로가 빌린 집의 가치는 이렇게 몇 단계 건너, 태평양을 넘어 스위스계 증권사의 손을 통해 만났다.

2005년 11월 초 판매를 시작한 우리파워인컴 펀드는 순식간에 1100여억원의 투자금이 몰리면서 판매가 조기 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우리은행 직원들은 안정적으로 자산을 운용하고 싶어하는 은퇴자나 노년층에게 펀드 가입을 권유했다. 하지만 펀드 설정 3년이 지난 2008년 12월 기준 이 펀드는 마이너스 83%의 수익률을 보이고 있다. 원금 손실이 없는 정기 예금에 비유하며 마치 예금처럼 속인 결과였다.


 
# 2007년 2월, 루세로 대출금 갚기 허덕


2007년 LA에서 서브프라임모기지로 집을 샀던 루세로는 집값이 40% 이상 하락하면서 빌린 돈을 갚는 데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삼촌에게 돈을 빌려 근근이 대출금을 갚아 나갔다. 루세로는 그나마 상황이 나았다. 같은 동네 사람들은 이미 대출 상환금을 3개월 이상 연체하고 집을 빼앗겼다. 미국 전역에서 집을 가압류당한 사람이 늘어났다. 이들이 대출금을 갚지 못하자 자금난에 처한 소규모 은행부터 파산하기 시작했다. 2007년 3월에는 주택담보대출 업계 2위였던 '뉴센추리파이낸셜'이 계속된 연체로 자금을 융통하지 못해 결국 파산선언을 했다.
 

# 루세로 집 가치 하락, 패니메이 넘어 월가 공격


서브프라임모기지 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약 1년여의 시간을 끌며 서서히 무너져갔다. 버틸 때까지 버티다 집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전역에서 집을 가압류당한 사람이 100만명이 넘어가자 모기지 대출 관련 업체들은 가속도를 내며 빠르게 연쇄 부도를 일으켰다.

최초 주택담보 대출을 담보로 했던 RMBS, CDO는 다른 파생상품으로 둔갑해 세계 곳곳의 금융기관으로 팔렸다. 이 파생상품의 줄기를 타고 미국 전역은 그리고 전 세계의 금융 기관들은 거미줄처럼 엮이고 또 엮였다. 동반 추락이 불가피했다. 투자은행도 개인들의 가압류 사태 속으로 함께 빨려 들어갔다.

CDO에 숨어 없는 것처럼 취급되었던 루세로의 빚은 루세로의 집값이 40% 이상 하락한 순간부터 그 모습을 완전히 드러냈다. 먼저 자신의 모습을 감쪽같이 숨겨주었던 CDO부터 공격했다. 루세로의 빚이 편입된 CDO가 집값 하락으로 부실화된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다시 그 상품을 만든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을 망가뜨리고 나아가 월가의 투자은행들도 위협했다.

전 세계를 무대로 파생상품을 만들었던 투자은행이 나가떨어지기 시작하면서 투자자들은 그때서야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위험성을 실감하고 자기 돈을 다 빼기 시작했다. 패니메이와 프레디맥도 예외가 아니었다.

투자자들이 프레디맥과 패니메이의 RMBS에 대해 한꺼번에 지급 요청을 하면서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두 모기지업체는 결국 2008년 7월 유동성 위기 사태에 직면한다. 이들이 RMBS 보증액수에 물려있던 금액은 무려 5조달러. 이것이 터지면 초우량 신용등급을 자랑하는 미국의 위상이 추락할 수 있다. 미국 정부는 선택의 여지 없이 2000억달러를 투입해 패니메이와 프레디맥 지분을 국유화한다. 그렇게 해서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은 살아났지만, 후폭풍은 계속되고 있다. 두 회사가 발행한 파생상품의 안정성을 믿고 전 세계 금융회사가 대량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우리CS자산운용의 우리파워인컴펀드는 그 수많은 투자자 중 하나였다.


 
# 루세로는 집 포기, 고대영씨는 펀드 가입 해지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이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패니메이는 2008년 8월18일 기준으로 무려 주가가 마이너스 81.48포인트를 기록하고 프레디맥은 마이너스 90.62포인트인 5.9로 폭락한다. 대출금을 갚지 못해 집을 가압류당한 루세로의 힘이었다. 제2, 제3의 루세로가 계속 나타난 결과였다. 우리은행이 집중 투자한 CEDO는 주가와 움직임을 같이 하는 ELS형태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충격은 더 컸다. 수익률은 폭락했다.
 

우리은행이 수선스럽게 홍보하던 CEDO A3등급도 2007년 12월24일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의 결과 신용 등급 BBB3로 내려갔다. CEDO는 미국뿐 아니라 유럽·아시아 등에 상장된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한 파생상품에도 투자됐다. 그러나 분산 효과는 거의 없었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퍼지며 동조화 현상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유럽 역시 미국과 약간의 시간차를 보였을 뿐 미국처럼 모기지 부실이 급속도로 드러났다. 파생상품이 전 세계로 뻗어나갔듯 위험도 전 세계를 넘나들었다.

이때 엄청난 하락률을 견디지 못한 우리은행은 고대영씨에게 펀드가 마이너스 45% 수익률을 내 원금이 전부 사라질 수도 있으니 펀드를 중도 해지할지 결정해 달라고 통보한다. 결국 그는 4500만원에서 남은 2000만원이라도 건져야겠다는 생각에 펀드 가입을 해지한다.

한국에서 안정적으로 살고 있던 중산층 고대영씨는 LA의 루세로와 서로 존재도 몰랐지만, 금융 세계화의 시스템 안에서 함께 만났고 휩쓸렸다. 인터넷을 통해 뉴욕에 앉아 전 세계 금융을 좌지우지할 수 있었던 금융자본의 수도 월가의 견제받지 않은 탐욕은 경기도 조용한 곳에서 동물병원을 운영하던 이와 LA 외곽에서 우편 포장 일을 하던 이를 연결하고, 그렇게 연결된 수 많은 사람을 동시에 불행으로 인도할 만큼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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