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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4) 금융위기에 접속된 나
장관순·송윤경기자


월가의 위험한 금융 게임이 펼친 숫자 놀음은 금융 자유화에 노출된 사람이면 누구나 예외없이 공격을 했다. 이 게임에 참여한 사람이건 아니건, 금융 자유화를 원했든 아니든, 상관없다. 펀드·주식에 투자하지 않은 서민들의 삶도 흔들 만큼 돈장난의 파급효과는 깊고, 치밀하고 집요하다.

“처음에는 TV에서 미국 금융위기 이야기가 나올 때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가 했어요. 그런 얘기는 그냥 뉴스일 뿐이고, 배운 것 없이 그저 몸으로 때워서 먹고 사는 우리 같은 사람은 신경쓸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이게 뭡니까.”

■ 일용직 노동자 정영태씨

서울 북창동의 한 인력소개소에서 지난 11일 만난 정영태씨(가명·52)는 “올해 같은 때는 없었다”고 푸념했다. 35년째 중국음식점 일용직으로 생계를 잇는 그는 이틀째 일을 못했다. 정씨는 “원래 연말연시에는 음식점이 호황이지만 올해는 10월 들어 경기가 죽더니 살아날 기미가 없다”며 “지난해만 해도 일주일 내내 일할 수 있었는데 올해는 한 주에 2~3일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다른 동료들과 함께 하루 종일 일거리를 기다렸지만 소개소에서 일손을 보내달라는 전화 한통 받지 못했다. 정씨의 하루벌이는 7만원 남짓. 봉제공장 직원인 그의 부인은 월 120만원 정도 벌지만, 그걸로 살기 빠듯해서 고3 수험생 딸까지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외환위기 때는 오히려 지금보다 나았어요. 다들 명퇴당하고 먹는 장사에 나섰을 정도로 이 나라는 요식업이 안된 적이 없었는데.”

인력소개소 관계자는 “서울 어디를 가도 새벽 인력시장마다 수백명이 몰려 들지만 일거리 찾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라고 말했다. 통계청의 ‘11월 고용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임시직 10만3000개, 일용직 5만6000개의 일자리가 줄었다. 건설 부문 일용직들은 일당이 깎이는 경우도 있다. 경기 부천시의 한 아파트 시공사는 “회사 사정이 어렵다”며 40여명의 현장 노동자 일당을 최고 1만원씩 깎았다.

■ 현대차 하청 노동자 원문숙씨

현대차 아산공장의 사내 하청업체 노동자 원문숙씨(31·여)는 3년간 행정적, 법적 투쟁 끝에 사측의 복직 결정을 받아냈다. 2005년 노조 활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한 뒤 원씨는 부모와 아들 등 4가족의 생계를 어머니(55)에게 의존했다. 아버지가 지병으로 몸져 누워 남편 대신 보험 일을 시작한 것이다. 월수입 100여만원. 그것이 원씨 가족의 유일한 수입이었다.

이런 사정이라 복직 소식이 너무 반가웠지만, 회사에서 아직 연락이 없다. 원씨는 현대차가 공장별 감산에 들어가 당장 일자리가 없다는 이야기를 사측을 통해 들었다고 한다. 원씨는 “최근 불경기 때문에 보험해약 사례가 늘어 어머니 벌이도 한창 때(170만원)에 못미친다”면서 “초등 3년생 아들은 형편을 잘 아는지 뭘 사달라고 조르지 않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금융위기가 부른 한파는 투자와는 거리가 멀었던 삶을 산 원씨의 3학년짜리 아들에게조차 장난감과 군것질을 포기토록 강요하고 있다.

현대차는 이달부터 잔업을 없앴고, 쌍용차는 지난달부터 순환휴직중이다. GM대우차는 이달 들어 공장별로 최장 1개월 조업중단을 진행중이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자동차 조립라인은 매일 2시간 잔업에 주말 1일 특근을 꽉 채워야 월급 150만원 정도 손에 쥐지만, 감산하면 100만원선으로 준다”고 설명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박동 연구위원은 “정부는 청년실업률을 6%대로 집계하지만 순수취업률은 42%라 청년 100만명이 실업자인 셈”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 금융 위기로 국내 미국 자본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돈이 궁한 국내 은행들이 기업을 상대로 자금을 회수하고 있다”면서 “그러면 중소기업들은 도산하지 않을 수 없고, 당연히 일자리도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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