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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구급차 안에서 119 구급대원이 환자로부터 폭행을 당했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필자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가해자가 술에 취해있던, 약물에 젖어있던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구급대원에 대한 폭행은 엄벌에 처해져야 마땅하다. 단지 아프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폭행이 용서받을 수는 없는 법이다.

현행 <119 구조·구급에 관한 법률>에서도 정당한 사유 없이 요구조자 또는 응급환자가 구조·구급대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등 구조·구급활동을 방해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명시되어 있다.

우리 사회가 고령화시대로 접어들고, 사회구조가 급격히 변모하면서 119 구급출동의 수요는 그야말로 폭주하고 있다. 일이 많다보니 구급대원들이 겪어야 하는 사건·사고도 자연스럽게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환자로부터 폭행을 당하는 것은 부지기수고, 신속한 출동을 위해 달리다보면 교통사고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런 이유로 일부 보험회사는 아예 구급차량의 보험 가입조차 거절하고 있는 실정이다.

119 구급대원을 단순히 환자를 이송하는 사람으로만 알고 있다면 큰 오산이다. 119 구급대는 응급환자에 대한 상담, 응급처치 및 이송 등의 전문적인 응급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소방공무원으로 편성된 단위조직으로써, 그 구성원인 구급대원은 응급처치에 관한 전문자격을 갖추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거기에 투철한 사명감과 희생정신으로 무장되어 있는 대한민국의 소중한 자산이다.

메르스(MERS)와 같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시민들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촌각을 다투며 한 명의 생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달리는 그들은 우리의 아들이자 딸이며, 친구이자 선한 이웃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들이 타고 있는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들을 위해 더욱 힘을 내어 달려가겠다는 그들의 비장한 함성소리이기도 하다.

이 건 _ 주한 미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대한민국에서 119 구급대원이 된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대학에서 응급구조학과를 전공하고 응급구조사 자격을 취득한 뒤 소방공무원 시험을 치러야 하거나, 간호사 면허를 취득하고 일정기간동안 병원에서 근무한 사람들이 어려운 채용경쟁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119 구급대원의 옷을 입을 수 있다. 구급대원이 된 이후에도 매년 40시간 이상의 임상실습 및 전문분야별 응급처치교육과 같은 특별교육훈련도 받아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구급차를 마치 ‘무료 콜택시’처럼 이용하면서, 버젓이 “내가 세금을 내는 데 왜 나를 도와주지 않느냐?”라며 생떼를 쓰기도 한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민원발생 소지를 최소화시키기 위해 일부 몰지각한 시민들의 억지스러운 요구마저도 맞추어 주려는 눈물겨운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에서는 구급차를 한번 이용하는데 적게는 우리 돈 20만원에서 많게는 80만원에 이르는 금액을 보험으로 처리해야 한다. 또한, 구급차에 탑승해 있는 구급대원이 어느 정도의 전문자격을 갖추었는지에 따라서도 이용 금액에 차이가 발생한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불법체류자나 저소득층은 몸이 아파도 구급차 이용금액에 대한 부담 때문에 아예 구급차를 부르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일부 의식 없는 사람들이 <국민에 대한 국가의 무한 책임>만을 강조하면서 비응급상황에서도 119 구급서비스를 남용하고 있다. 단순 감기, 술에 취한 사람, 만성질환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정기적인 병원 방문에 구급대원을 부르는 것은 119 구급서비스 본래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

이에 구급대원의 전문성을 극대화하고 그들이 최대한으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몇 가지 소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현장에서의 응급 또는 비응급환자에 대한 결정 및 이송여부에 관해서는 구급대원의 판단과 재량권을 최대한 인정하되, 비응급환자 처리에 대해서는 단호한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 자칫 인정에 이끌린다든지 민원발생에 대한 우려로 비응급환자들마저 아무런 기준 없이 이송한다면 이는 국민들에게도 잘못된 신호를 보내는 것이며 국가자원의 효과적인 배분과 운영에도 차질이 생길 것이다.

두 번째로는 구급대원들이 법적 안전장치의 충분한 보호를 받으며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모든 구급차량에 대한 보험가입이 선행되어야 하며 사고발생시 법률적 조언과 지원도 제공되어야 한다. 아울러 구급대원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정기적인 심리상담 및 트라우마 관리도 필요하다.

세 번째로는 단순 환자이송 통계수치만을 기준으로 구급대원의 근무실적이나 또는 그들이 속해있는 소방서를 평가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행정편의주의에 근거한 탁상행정이 아니라 현장에서 어떤 구급서비스를 통해서 지역사회에 기여했는지에 대한 보다 교육적이고 효과적인 평가모델이 마련되어 모든 구급대원들이 현장에서 체득한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게 된다면 대한민국 구급이 지금보다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될 것이라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국민들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과 홍보를 통해서 꼭 필요한 사람들이 적재적소에서 119 구급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시민들의 이해와 협조를 구해야 한다.

대 한민국 소방이 높은 수준의 119 구급서비스를 제공하는 목적은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아무런 차별 없이 신속하게 응급처치를 받아 인간으로써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데 있으며, 이것이 바로 세이프 코리아(Safe Korea)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동안 119 구급대원들의 땀과 노력으로 죽음의 순간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제는 구급대원의 전문성과 그들만의 소중한 역할에 맞는 예우를 갖추어야 할 시점이다.

이 건 | 주한 미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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