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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도입된‘소방특별조사제도’는 그동안 국가가 주도해오던 건축물 안전관리를 건물주 중심의 자율적 관리체제로 전환한데 큰 의미가 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시행한지 고작 3년밖에 지나지 않은 현시점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을 들어 소방검사 전수조사체제로의 복귀 필요성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모양새다.

소방시설 관리 전반에 문제가 있으니 다시 소방관들로 하여금 전수조사 시켜야 한다는 논리에 필자는 결코 찬성할 수가 없다. 매번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소방관들을 잉여인력으로 인식하고 여기저기 마구 투입하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소방관이 그저 화재출동만을 기다리면서 무미건조하게 앉아 있는 사람으로 생각한다면 이는 대단히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소방검사 인력부족이란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국가가 모든 건물을 일일이 다 챙겨야 하는지 그 실효성에 의문이 있다. 건물 관계자는 마땅히 자신이 소유했거나 혹은 사용하는 건물에 대해서 안전관리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다. 아울러 관리가 소홀해서 화재가 발생했다면 그 책임 역시 온전히 건물 관계자의 몫이 되어야 한다. 물론, 현저하게 위험한 상황이 존재한다거나 혹은 시민들의 지원요청이 있을 경우에는 국가가 나서서 행정적, 기술적 지원을 해 주는 것은 바람직하다.

이미 수차례 지적된 바와 같이 소방검사 전수조사는 시민들의 책임을 상당부분 소방관에게 전가하는 일이며, 자신의 안전의무를 소홀히 해도 된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과도 같다.

게다가 어느 한 건물에서 화재라도 발생하게 된다면 그 사고책임의 화살이 소방관을 겨냥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생기게 되므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국가와 국민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시스템은 결코 아닌 것이다.

소방검사는 얼마나 많은 수의 건물을 검사할 것인가의 문제와 얼마나 질적으로 깊이 있는 수준의 검사를 할 것인가에 대한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과제다. 또한 소방검사 계획을 수립할 때에도 각 지역별 특성과 계절에 따른 화재추이가 충분히 반영되어야 한다.

필자는 소방검사 분야에서만 10여년 넘게 업무를 해오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규정과 현실간의 괴리를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더 안전할 지에 대한 고민은 여전하다. 또한 소방검열관이 그 해석을 함에 있어서 과연 융통성의 여지가 존재하는가하는 문제와, 만약 존재한다면 어느 정도까지 그 자의적 해석이 허용되어야 하는가의 문제도 쉽지 않은 고민거리다.

2012년 미국 보스턴에서 개최되었던 한 소방세미나에서 필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미국의 소방관들에게 한 적이 있다. 질문의 요지는 “미국에서는 소방검열관이 소방검사를 잘못해서 문책을 받은 사례가 있는가”라는 것이었고, 필자의 우문(愚問)에 세미나장은 일순간에 얼어버렸다.

이 건 _주한 미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그들의 말을 빌리면 기본적으로 건물의 안전은 건물 관계자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소방관들은 자신을 희생하면서 까지도 시민들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약속을 한 사람들로써, 설령 소방검사에서 다소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고 해도 징계를 받은 사례는 들어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런 발상의 질문이 가능한지를 오히려 필자에게 되물어 대단히 민망했던 기억이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그저 한두 해 소방검사를 한 사람에게 완벽함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소방검열관을 보다 숙련된 화재예방 전문가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전문성에 대한 투자와 업무연속성이 보장되어야 하고, 각종 지적사항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필요하다면 강력한 행정적 지원이 제공되어야 한다.

아무리 작은 건물이라고 할지라도 소방검사를 제대로 하려면 소요되는 시간이 상당하다.

하나의 건물을 검열함에 있어서는 다각적인 접근을 통한 위험성 분석이 우선이다. 먼저 건물의 위치와 인근 건물과의 접근성을 확인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 건물의 인프라를 전반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건물이 지어진 년도수를 비롯해서 현재 사용하고 있는 설비, 즉 소방, 전기, 가스, 기계, 냉난방 등의 정상작동여부와 개별 설비의 노후성에 대한 평가도 필요하다.

그런 다음 해당건물이 현재 어떤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지, 사용하던 중에 비정상적인 용도변경이나 구조변경이 있었는지, 상주하는 혹은 평상시 출입하는 예상인원은 몇 명인지를 파악해야 힌디. 화재로부터 취약한 부분은 어디인지도 반드시 확인해 보아야 한다. 만약, 화재가 발생한다면 어느 정도의 피해가 예상되는지 그리고 소방차 진입로 확보 및 소화전 등 인근 소방용수의 가용성도 챙겨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소방검사 결과에 대해 관계자와 깊이 있는 논의를 통해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하고, 건물 특성에 맞는 안전관리에 관한 교육도 필히 이루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재난의 절반가량은 인간의 실수(Human Error)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건물을 규정이라는 잣대로 바라본다면 지적을 받지 않을 건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단순히 그런 공식에 근거해서 소방검사를 하는 담당자가 자신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한 두건의 적발건수만 채우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소방검사의 근본 취지에 맞지 않는다. 단순 적발건수에 초점을 맞추다보면 화재의 위험성을 사전에 찾아내서 제거해야 하는 소방검열관 본연의 업무에 대한 직무유기를 초래할 수 도 있으며, 이것이 바로 적은 인원으로 소방검사 전수조사를 하게 될 때에 예상되는 문제점 중에 하나다.

소방검사 전수조사는 소방검열관들에게 위험성 평가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의 시간을 주기 보다는 단순히 체크리스트에 근거해 기술적으로 적발건수만 채우기에 급급하게 만들 뿐이며, 무분별한 적발로 인해서 오히려 건물 관계자에게는 혼란을 가중시키고, 올바른 소방시설관리에 있어서도 악순환을 초래할 개연성이 크다.

단순히 소화기에 문제가 있다거나 비상구 조명등이 작동되지 않는 것을 적발하는 것으로만 소방검사가 제한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경보설비나 스프링클러도 소방관 자신이 직접 만지기보다는 관계자가 작동점검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하지만, 전수조사라는 덫에 걸리면 관계자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오히려 시간을 낭비한다고 판단하고 그냥 소방관들 스스로가 직접 작동점검을 하는 방식을 택하게 된다.

건물 관계자에 의한 자율적인 소방안전 관리체제가 자리를 잡으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정부에서도 다각적인 방면으로 이 제도가 원래의 취지대로 정착될 수 있도록 지원을 해 주어야 한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무작정 전수조사로의 복귀를 검토하기보다는 지금의 제도를 충분히 활용하면서 보완책을 마련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이 건 | 주한 미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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