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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후반, 군부독재 아래에서 전국민중연합 등 민중단체를 만드는 게 유행했다. 목숨 거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감옥 가는 정도는 각오를 해야 하는, 나름 비장미 있던 시절이다.
같은 기간, 인천 지역을 출발점으로 한 인민노련, 서울을 중심으로 한 서노련 그리고 사노맹 같은 지하 조직들도 활발히 움직였었다. 지금은 이 나라의 주인임을 자처하는 듯한 이재오가 서울민중연합의 대표였고, 조국 교수는 사노맹 출신, 진보신당의 노회찬은 인민노련, 그런 곳들이 역사의 주체이던 시절이 있었다.

지난 지방선거의 TV 토론회에서 김문수와 심상정이 맞붙을 때, 마주 선 두 사람 사이에 묘한 애절함이 느껴졌던 것은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그들은 한때 서노련에서 핵심 지도부로 같이 활동하던 동지였다.
이재오가 운영하던 서노련에서 비상근 간사로 단체 생활을 처음 시작한 나는 지금 이재오를 보면 정말로 만감이 교차한다. 전두환에서 노태우로 이어지던 그 시절, 우리는 군부독재를 종결시키는 것이 시대의 사명 같은 것으로 느껴졌고, 그 시절에 뭔가 하고 싶었던 사람들이 사회주의 붕괴 이후 제각각 흩어지면서 90년대라는 독특한 공간이 열리게 된 것 같다.




당시 40대 기수론을 내걸었던 3명의 핵심 지도자가 김근태, 이재오, 이부영이었는데, 한국 사회운동이 젊은 리더십을 가지고 있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40대 기수가 거의 없고, 할아버지들만 넘쳐난다.

이런 민중단체의 시대보다 약간 뒤늦게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경실련 같은 단체들이 역사의 주무대에 등장하고, 아마 가장 오래된 조직이라고 할 수 있을 YMCA 같은 곳도 시민단체의 한 축으로 자기 역할을 재정립하게 된다. 좀 넓게 보면 한살림 등으로 대표되는 생협운동도 그즈음 어느 정도는 자기 형태를 갖추게 된다. 생협은 생명운동 등으로 시민운동과는 좀 다른 범주로 분류하기도 하지만, 2011년의 눈으로 본다면 넓게 시민운동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정치적으로 본다면, 유럽의 경우는 민중운동이 사민당 혹은 사회당 등의 이름으로 정치 세력화를 이루고, 시민운동이 녹색당 혹은 무지개연합 같은 방식으로 정치 세력화를 이루었다. 좌파도 장기간 집권하면 부패하기 시작하는데, 독일·프랑스에서 녹색당이 별도로 생겨난 것은 그런 좌파의 부패와 아주 무관하지는 않다. 일본 역시 유사한 문제점이 생겼고, 지역당 형태로 가나가와 네트워크가 등장하게 된다.
어쨌든 한국 경제가 압축성장을 이루는 동안에, 우리의 정치도 압축적으로 전개되어서 현실적으로 민주당을 중심으로 정치참여를 할 거냐, 아니면 별도의 민중정당을 만들어 진보정당 노선을 할 거냐, 이게 87년 대선 이후 20년이 넘도록 운동 단체의 정치참여에 대한 핵심 논쟁거리다. 핵심은 민주당을 더 왼쪽으로 데리고 와서 좌파들도 지지할 거냐, 민주당은 도저히 곤란하니까 별도의 정당을 만들어야 하는 거냐, 그 문제다.

단체라는 눈으로만 생각해보자. 민중단체가 만들어지면서 군사정권은 결국 물러섰다. 시민운동이 만들어지면서 보수주의자들에게서 정권을 찾아오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여전히 실체를 의심하지만, 뉴라이트가 생기면서 10년 만에 다시 정권을 가져가게 되었다. 정치라는 게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고, 가장 많은 ‘혁신’이 일어나는 것은 단체가 생겨날 때 벌어지는 것 아니겠는가? 자, 그렇다면 그 다음 운동은?

규모와는 상관없이 최근에 새로 생겨난 단체들을 주체의 관점으로 보면 세 개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촛불 시민. 주체 없는 주체 혹은 탈권위주의 시대의 신주체라고 할 수 있는 흐름이 분명 하나 생겨났고, 문성근의 민란 운동 역시 넓게 보면 이런 범주로 생각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청년 운동. 청년 유니온이 대표적이지만, 그렇게 드러나지 않는 작은 흐름들이 새롭게 생겨나는 중이다. 세 번째는 아줌마들이 본진을 형성하는 흐름.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 같은 것이 대표적인데, 40~50대 남성 혹은 명망가 중심으로 전개되던 기존의 운동 흐름과는 분명히 다르다. 여성들이 많이 참여하지만, 페미니즘과는 약간 목표가 다른 새로운 운동, 이것은 분명 새로운 흐름이다.

이걸 민중운동, 시민운동과 대별되는 제3의 운동으로 보아야 할지, 아니면 기존의 시민운동의 연장선에서 보아야 할지는 아직 더 지켜보아야 할 시점이다. 그러나 분명히 진보 혹은 좌파 쪽에서는 고통스럽던 이명박 정권을 버티면서 작지만 의미 있는 흐름을 만들어낸 것은 사실이다.
보수에는 없는 절박함이 분명 이 시대에 생겨났고, 제3의 힘이 향후 한국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기대가 생겼다. 청년, 아줌마, 이들이 새로운 역사적 주체로 등장하는 중이다. 우파에는 그런 절박함이 없지만, 우리에게는 절박함이 있다. 폭풍을 만들 뜨거운 수증기가 태평양에서 만들어지듯이, 새로운 흐름이 속속 등장하는 중이다. 그게 내가 다음 대선은 우리가 이긴다고 보는 두 번째 이유이다.


※우석훈의 ‘시민운동 몇 어찌’는 신라 향가 해석으로 유명한 양주동 박사의 ‘몇 어찌(幾何)’라는 수필에서 인용한 단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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