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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시장 당선 이후로 너무 상식적인 일이었지만, 우리가 이상하게 정치를 하다 보니 이런 것들을 회복하는 게 혁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변화의 속도는 어느 정도, 변화의 폭은 어느 정도, 이런 논의들이 이제 시작되는 것 같다. 한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그건 너무 당연한 일이다.

최근에 서울시정과 관련해서 한 가지 논란을 보면서, 노무현 집권 초기의 NEIS 논의가 잠시 떠올랐다. 돌이켜 보면,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을 지지했던 지지자들과 그가 첫 번째 충돌했던 사건이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의 약칭인 바로 이 NEIS였다. “도대체 이깐 나이스가 뭔데, 나에게 이렇게들 난리를 치느냐?” TV 토론에 나온 그가 이렇게 얘기했었는데, 이라크 파병 이전인 이때 이미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떠나기 시작한 걸로 기억한다. 시청 앞 스케이트장 논의를 보면서, 나이스 논의할 때의 모습이 내 머리를 빡하고 때리고 지나갔다.

서울 시청 앞 야외 스케이트장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사람들 (경향신문DB)


기회가 될 때마다 얘기를 했지만, 시장으로서 이명박 시장과 오세훈 시장 모두, 스케이트장 문제에서는 범죄자라고 생각한다. 시청 앞 스케이트장은 파리시에서 가져온 것인데, 파리가 원래 우리보다 대기 조건이 좋은 데다가, 시테섬 그것도 간선도로 뒤쪽으로 후미진 곳에 파리 시청이 있다. 우리의 경우는 그와는 다르다.

알기 쉽게 미세먼지라는 걸 가지고 얘기를 해보자. 이건 입방미터라는 기준에 몇 마이크로그램의 미세먼지가 있는가를 단위로 한다. WHO 권고안 기준으로 하면 연간 20마이크로그램(이하 단위 생략) 정도 되는데, 우리는 일평균 100정도를 기준으로 한다. 유럽 대부분의 도시보다 도쿄가 2배 정도 높고, 우리는 거기에서 또 2배 정도 높다고 보면 대충 맞는다. 이게 20~30 이상 올라가면, 아무래도 그 상태에서는 격렬한 운동 같은 걸 자제하는 게 맞는다.

몸무게에 따른 피폭 기준을 실제로는 사용하는데, 이걸 인간의 말로 바꾸면 성인에 비해서 몸무게가 가벼운 어린이나 유아는 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2010년 기준으로 시청 앞 측정망이 있는 서소문 지점은 11월 70, 12월 63, 1월 58, 2월 50, 연평균 안전치 기준으로 사용하는 50을 넘는 수치가 기록되어 있다. 일일 기준으로 하더라도 이 지점은 일평균 법적 기준인 100을 21회나 넘는 지역이다.

안 그래도 WHO 권고안에 비해서는 헐렁한 기준을 정하고, 그나마도 연간 수차례씩이나 피크치를 넘어서게 된다. 우리가 법적 기준을 국제 기준이나 선진국 평균 정도에 맞추면, 서울은 수시로 휴교 조치를 해야 하고, 어린이들의 야외 외출을 자제하게 해야 하는 도시이다.

환경이나 생태의 실무자들은 어지간히 아는 얘기들이다. 그렇다면 이명박 혹은 오세훈 시절의 대기관련 공무원들이 이 사실을 몰랐는가? 아니, 토론회 등 여러 경로로 그들도 이 문제를 알고 있었다. 왜 말씀하시지 않으셔요? 시장님이 무서워요. 이런 상황에서 시청 앞이든 광화문이든, 스케이트장을 운용하고 있다는 것은 내 눈에는 한국의 행정절차가 마비되어 있다는 것으로만 보였다. 결국 공무원이든, 시민단체 활동가든, 학자든, 우리는 이 이상한 10년 가까이를 방치하고 있었다. 부모들이 자신도 모르게 자식들을 보건적 위험에 빠뜨리게 하는 일, 그게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새로운 제도를 만들거나, 지원책을 찾아내는 것 혹은 꼭 필요한 시설물을 만드는 것은 돈이 드는 일이다. 그래서 시간이 걸리고, 제도를 안정화시키는 데 절차가 필요하다. 그러나 시청 앞 스케이트장 같은 것은, 하지 않으면 되는 간단한 일이다.
‘생명’이라는 표현을 써보자. 지난 두 시장을 거치면서, 뭐라고 표현하고, 무슨 업적이 있다고 하던간에, 서울은 생명으로부터 아주 먼 도시였다. 우리들의 2세들을 오염물질 가득한 광장에 방치하면서, 이게 개방이다, 이게 디자인이다, 그랬던 사람들이다. 미세먼지는 새발의 피다. 정확하게 측정하면 1급 발암물질이 포함된 VOCs(휘발성유기화합물)도 수시로 법적 기준을 넘겼을 곳이 바로 시청 앞 스케이트장이었다. 당연한 것이, 자동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VOCs가 그곳에도 넘치지 않았겠는가? 일상 생활에서도 위험한 것을, 어른보다 피폭 피해가 몇 배나 클 어린이들을 그곳에서 운동하도록 전시성 행정으로 방치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4대강을 하면서 녹색성장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어불성설이듯이, 시청 앞에 스케이트장을 두고 유아 복지나 생태 도시 얘기를 하는 것, 전부 황당한 얘기가 된다. 돈이 들지 않는 시급한 일들이 있는데, 스케이트장 같은 것은 실무 공무원들도 대부분 알고 있는 얘기이다. 시청 앞에 오염물질이 많다는 것을 아는데, 무슨 대단한 지식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거기에 스케이트장을 놓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아는데 전문가가 될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다. 생명 경시, 이건 그만 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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