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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를 비롯한 우파들은 좌파도 잘 모르고, 진보도 잘 모르고, 시민단체는 더더구나 모르는 것 같다. 안철수의 등장 이후 몇 달 동안 내가 보수 신문들을 살펴보면서 내린 잠정적 결론이다. 하긴 나도 시민단체를 어디까지 봐야 하고, 어떻게 분류를 해야 할지, 좀 갑갑할 때가 많은데, 자기들이 어떻게 알겠나?

어느 정도까지 아나, 좀 자세히 살폈는데, ‘만일 결사’라는 걸 모르는 것 같고, 정토회 홈페이지에 나온 기본 사항 외에는 거의 모르는 것 같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는데, 자기가 누구와 싸우고 있는지, 상대편 본진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전혀 모르니 이길 수가 없는 거다.
연재를 시작하면서 이 싸움에서 우리가 지지 않을 거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들은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이런 큰 데나 좀 알지, 한국의 시민운동이 그동안 얼마나 깊어지고 넓어지고 복잡해졌는지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누구랑 싸우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이겨?

나는 불자는 아니지만, 어지간히 바쁠 때 아니면 최대한 도와드리려고 하는 큰 스님들이 몇 분 계시다. 도법, 수경, 두 분이 그렇고, 또 다른 한 분이 법륜스님이다. 지율스님이 ‘요승’으로 불리며 생명을 건 단식을 하고 계실 때, 한편으로는 공권력에 쫓기고 또 한편으로는 조계종의 호법승들에게 쫓기고 있었다. 그때 지율을 거둔 분이 바로 법륜이고, 그때에 아마 한국의 생태운동사에 남을 만한 명언을 하셨다.

법륜스님

“내 눈에 죽어가는 도롱뇽은 안 보여도, 지율이 죽어가는 것은 보이더라.”

당시 조·중·동과 환경부 공무원들에 의해서 요승으로 몰렸던 지율을 꼭 살리고 싶었는데, 내게는 그럴 힘도 능력도 없었다. 나는 법륜스님에게 목숨 빚을 진 것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살고, 당신이 하시는 일은 어지간하면 도와드리려고 한다. 법륜스님에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주 많다. 그러나 법륜스님 개인에 대한 감정은 아니다. 바로 ‘만일 결사’라는 것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나의 신뢰이다. 만일 결사, 이런 게 있다는 걸 알고서 나도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만일이면, 27년 조금 넘는다. 어지간한 사람의 청춘은 이걸로 다 지나간다.

초기 환경운동 중, 밥을 남기지 않는 ‘빈그릇 운동’이라는 게 있었다. 그게 바로 만일 결사를 결의한 정토회에서 시작된 일이다. 일종의 종교운동이면서 동시에 시민운동이기도 한데, 환경운동이나 여성운동 혹은 평화운동과 같은 기존의 시민단체 분류로는 정토회를 이해하기 어렵다.

안철수 교수를 현장으로 끌어낸 게 법륜스님이라는 말은 맞지만, 그렇다고 안철수 개인이나 법륜 개인을 본다고 해서 지금 한국을 뒤흔드는 본진이 어떤 건지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정당을 만들 것이냐, 말 것이냐, 그런 제3정당론은 사태의 핵심과는 한참 비켜나가는 얘기다.
만일을 결심한 사람들에게 정당은 오히려 부수적인 수단이고, 진짜 이 사람들이 하고자 하는 것은 좋은 세상 만드는 일이다. 좌우란 단어 혹은 진보·보수라는 단어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또 다른 층위의 일들도 세상에는 존재하는 법이다. 자기 편 아니면 전부 ‘빨갱이’로 몰아붙이는 조선일보가 이걸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보수는 약간 이상하지만, 어쨌든 북한에 대한 포비아(혐오)적인 증오와 미국에 대한 지독할 정도의 애정 그리고 재벌에 대한 숭상, 이런 것들을 뒤섞어 ‘자유민주주의’라는 요상한 이념을 만들었다. 그리고 한국의 돈도 다 자기들이 가지고 있다. 요즘 용어로 1%.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조잡한 이념과 돈 그리고 공권력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감동과 정성이 있어야 사람들의 진짜 마음을 살 수 있고, 그래야 인심을 얻는다. 오랫동안 조선일보는 친북으로 몰아서 협박하고, 방송인 등 사람들 밥줄을 끊는 걸로 힘을 과시했다. 그래서 생겨난 부작용이 돈과 대가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실용 보수’이다. 지독하게 실용적!

다음 대선에서 왜 한나라당이 질 수밖에 없는가? 돈으로 움직이는 조직은 정성으로 움직이는 조직을 절대로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시민운동 세력에 이런 집단이 정토회밖에 없는가? 묵묵히 움직이는 그런 크고 뿌리 깊은 집단이 몇 개 더 있다. 그 중에 하나를 이번에 안철수의 등장으로 본 것인데, 때는 이미 늦었다는 게 내 진단이다.

조선일보가 오랜 싸움으로 민주당을 다루는 법은 익숙해 보인다. 그러나 시민운동의 역사가 20년 가까이 되면서, 아주 끈적끈적하고 끈질긴 흐름들이 생겨났다. 이 사람들이, 이명박 정권으로는 도저히 안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세상을 위해서, 사람들을 위해서 만일을 바칠 사람들이 보수에도 있는가? 이 싸움은 조선일보 입장에서 보면 아주 칙칙하고 어두운 전장이다.

한나라당이 하는 ‘드림 토크’가 어려워진 이유, 잘 생각해보시라. 출연진이 인기가 없거나, 명분이 없어서가 아니다. 정성을 담아낼 그릇, 한국의 보수에는 지금 그게 없는 거다. 힘? 그거 생각보다 허무하다. 정신의 싸움에서 MB를 수장으로 만든 그 사람들이 지금 시민운동에 정신적으로 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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