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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이상한 서울시장 선거가 생겨났다. 그리하여 우리는 생각지도 않던 이상한 선거 국면으로 들어갔다. “한국의 6개월은 조선왕조 500년과 같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은 대체적으로 맞는데, 이번 경우에는 정말 딱 들어맞는다.

이번 선거가 시작할 때 내가 예상한 것은 박원순의 인품과 한나라당의 마타도어(흑색선전)의 맞대결, 그 정도이다. 미안하지만, 시민운동을 하면서 우리가 그렇게 높고 높은 지도자라고 생각했던 ‘박변’은 5%의 인지도, 박원순의 파생 상품에 다름 아니었다. 설마 안철수와의 단일화 없이, 혹은 안, 박, 나, 그 3자 구도에서도 여전히 박원순이 지금의 지지도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없으시겠죠?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지난 서울시장 선거, 노회찬이 죽어라고 만든 수치가 2%이다. 이건 한국에서 자신이 진보가 아니라 좌파라고 여론조사에서 답변하는 사람들의 수치와 일치한다. 개인 심상정과 노회찬은 이보다 훨씬 더 인기 있는 인사가 될 수 있지만, 좌파로 이해될 때 그들의 현실 정치는 2%의 지지도에 갇힌다.

여기를 벗어나면 처음 만나는 선, 지난 10년간 한국의 시민운동이 만든 지지도, 박원순의 5%를 만난다. 돗긴갯긴, 하여간 그가 처음 출마한다고 할 때, 한국 사회는 “박원순이 누구야?”, 그렇게 반응을 보였다. 민주당의 대권후보들, 손학규, 정동영, 다 요 언저리에서 고만고만하다.
이걸 넘어설 가능성은, 연초에 조국이 한번 보여준 적 있다. 그러나 그는 선수와 심판 그리고 서포터스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타다가, 일단 응원역으로 물러났다. 그 다음에 5% 언저리의 지지도를 넘어선 첫 선수가 문재인. 박근혜와 한판 떠볼 가능성이 있다고 사람들이 본 첫 번째 선수가 바로 문재인 아닌가? 아무 것도 없고, 정치는 싫다던 그가 그렇게 본격 정치인이 되었다.

그리고 이 시리즈의 클라이막스는 일단 안철수. 그는 수치상으로 맨 처음 박근혜를 넘어섰다. 그가 원하든 원치 않든, 지난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MB가 박근혜를 넘어선 이후로 처음으로 그녀를 넘어섰다. 요기까지가 객관적 지표이다. 참, 한국에는 인물이 많기도 하다. 대안이 누가 있느냐, 맨날 그러지만, 계속해서 사람들이 튀어나온다.

박원순 서울시장 야권단일후보가 정책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경향신문DB)


그렇다면 이번 보궐선거에서 박원순은 무얼 얹었는가? 선거 막판에 이 고민을 해보지 않을 수가 없다. 기존의 관점으로 보면, 나경원 공약도 별 거 없지만, 박원순의 공약도 별 거 없다. 적어도 행정수도 이전, 청계천 그리고 무상급식, 그런 걸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박원순이나 나경원이나, 사실 좀 약하다.

그러나 중대한 차이점이 있다면, 박원순이 이번에 내건 공약은 기본적으로는 절차에 관한 공약이라고 할 수 있다. 작게는 시민참여예산처럼 수년 전부터 풀뿌리 시민단체가 늘 써먹던 이야기부터 크게는 서울시민의 권리선언까지, 이걸 기술적으로 해석하면 사업이 아니라 절차 자체를 공약으로 내건 거라고 할 수 있다. 프로젝트가 아니라 과정 자체가 공약이 된 이 상황, 그게 현실성이 있을까? 어쨌든 그게 우리가 가야 할 길이기는 하다.

사실 캠프에서 책사들이 급조한 조악한 프로젝트들 대신, 시민의 권리 자체를 공약으로 내건 것은 한국 정치사에는 없던 일이다. 예를 들면, 일자리 공약에서 몇 개를 만들겠느냐를 공약으로 걸거냐, 아니면 스웨덴처럼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공약으로 걸 거냐, 그런 차이와 같다. 사실 이 공약이 사회적 협약으로 전환되면 지금의 정규직·비정규직 문제는 상당히 풀린다. 여기에 독일처럼 지역임금협의회 같은 게 더해지면 고용문제는 상당히 풀 수 있다. 일자리 몇 개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걸 만드는 원칙이 더 중요한 이유이다.

이런 답답한 방식이 시민단체가 일하는 방식이다. 그걸 나경원은 ‘아마추어리즘’ 혹은 ‘공약 없는 후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건 방식의 차이이다. 시민단체는 절차로 일한다. 그게 지금 박원순과 함께, 짧게나마 우리들 앞에 모습을 보인 것이다. 박원순 이후에도 이런 선거에 나서게 될 사람들이 참고하면 좋을 듯싶다. 무슨무슨 프로젝트가 아니라 그걸 정하는 원칙이나 절차 혹은 사회적 합의 사항을 공약에 내걸 수 있다는 것, 그게 이번 선거에서 박원순이 시민운동의 창업자로서 보여준 기여이다.

답답해 보이는 박원순의 공약은 사실 시민단체가 소통하고 대화하고 공감하는 방식의 또 다른 표현이다.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 그런 질문이다. 청계천, 대운하 그런 것들을 공약으로 보다가 우리가 까먹어버린 것이 바로 절차이다. 왜 우리가 현 정부를 그렇게 싫어하는가? 그들이 토건에 속한 구시대의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절차를 아예 생략해버리는 비민주적 인간, 비토론적 인간들이라서 그런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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