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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2.1연구소, 타이거 픽처스 자문

2008년의 촛불집회는 지금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한나라당은 아직도 MBC ‘PD수첩’이 괴담을 만들어냈고, 이게 인터넷을 통해 유포되면서 사건이 벌어진 ‘괴담 사건’으로 이해하는 듯싶다. 만약 한나라당이 이번 총선을 계기로 국회는 물론이고 대선에서도 정권을 내어준다면 그 일등공신은 김어준과 SNS가 아니라 한나라당 사람들이 선호했던 두 개의 단어 ‘포퓰리즘’과 ‘괴담’이라고 생각한다. 

 아이쿱(iCOOP)생협 회원들이 친환경 무상급식 운동본부 발족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경향신문 DB

포퓰리즘으로 망한 건 이유가 명확하다. 대중정치라는 게 사람들에게 애정과 인기를 얻고 싶은 게 기본 작동방식인데, 자기 스스로 인기가 싫다고 하니 소멸할 위기를 자초하게 됐다. 괴담, 이 단어 역시 상대를 보지 않고 마구 주먹을 휘두르는 복서처럼 보수들을 바보로 만들었다. 만약 후대가 한나라당의 위기 혹은 소멸에 관해서 해석한다면 이렇게 얘기할 듯싶다. 괴담이라는 말에 스스로 갇혀, 한나라당은 사회과학적 분석을 거부했다. 

여러분은 촛불집회에서 어떤 순간을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꼽으시겠는가? 고등학생들 소위 ‘촛불소녀’들이 나온 걸 중요하다고 볼 사람도 있고, 청와대 목전까지 갔던 걸 꼽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미학적으로는 ‘명박산성’이라는 해괴망칙한 구조물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인 사람도 있다. 소설가 공지영이 그랬던 것 같다. ‘오됴쟁이’ 시절에 나도 열심히 글을 쓰던 와싸다라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촛불집회에 대거 나온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역시 제일 중요한 사건은 한살림의 깃발이 촛불집회에 내걸린 게 아니겠는가? 

너무 넓은 범위의 운동이라서 기존의 민중과 시민 프레임에 잘 잡히지 않는 운동의 한 흐름으로 생명평화운동이라는 게 있다. 그 한 극단에 생활협동조합 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 한살림이 있고, 또 다른 한 쪽에는 채식주의자와 동물애호가들이 모여서 형성된 카라라는 조직이 있다. 안철수 교수의 청춘콘서트를 기획한 평화재단의 원형 중 하나인 정토회 역시 넓게 보면 생명평화운동으로 분류된다. 유기농 운동에서 채식을 거쳐 동물보호까지, 이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일련의 흐름은 2000년대 들어와서 어느 정도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는데, 학교급식운동의 초창기 흐름 역시 이런 생명운동 위에 얹혀 있던 것이다. 

초기에 우리가 했던 논의는 생협 조합원이 100만명이 되면 4인 가족으로만 쳐도 400만의 밥상공동체가 생길 수 있으니 늦게 가더라도 언젠가는 한나라당 없는 세상 혹은 토건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거였다. 한살림 조합원은 벌써 예전에 10만명을 넘어섰고, 많은 생협들의 조합원이 촛불집회를 경계로 폭발적으로 늘었다. 정확한 추산은 어렵지만 생명이라는 말에 동의하는 조합원이 이미 전국적으로 5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사람들이 바로 4대강에 반대하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불안하게 생각하며 농지투기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다. 계급, 시민, 이런 단어들을 쓰지는 않아도 한나라당이 움직이는 것과 정반대의 세상을 희망하며 집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 한나라당이 당하면서도 과연 누구한테 당하는지 알지도 못하는 것, 그게 바로 생명평화운동이다. 

30~40대 여성에서 20대 여성들에게 지난 수년 동안 폭넓게 퍼진 흐름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새로운 흐름에 대한 감수성이다. 이게 지금 세상을 바꾸는 중이다. 이 흐름은 기존의 여성주의 등 여성운동과 묘하게 다르면서도 겹친다. 밥상으로부터 시작해서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철학, 이게 지금 유기농 식단을 벗어나 동물 그리고 공동체의 연대의식으로 급진화하는 중이다. 

여기다 대고 포퓰리즘 운운했으니 한나라당의 세상인식도 참! 여성운동 중 여성민우회가 대표적으로 여성과 생명운동의 접경에 서 있는 곳이다. YMCA의 등대생협은 종교운동과 생명의 접경에, 불교생협은 말 그대로 불교와 생명의 접경에, 이렇게 생명진영 조직들이 급속하게 커지는 중이다. 

마지막 남은 도화선은 과연 이 생명운동의 흐름이 탈핵까지 넘어올지, 그게 이번 총선의 남은 쟁점 중의 하나이다. 할아버지들이 방사능에 대해서 느끼는 공포감과 가임여성들의 공포감은 100배 이상 차이가 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하여 여성들의 핵에 대한 경각심이 점점 클라이맥스로 가는 동안, 한나라당은 편서풍만 얘기하며 일본과 한국을 지구 정반대편에 있는 나라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다. 

여성들의 시대, 이건 1990년대 초창기의 여성단체들이 상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더 넓게, 더 깊게 그리고 덜 날카롭게. 그렇지만 이 도도한 흐름을 한나라당은 이해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여성민우회나 카라 같은 데가 뭐 하는 덴지 들어나 보셨나? 이번 정권은 국회에서 민주당에 진 게 아니라, 식탁을 중심으로 탈핵으로 나아가는 바로 그 여성들에게 길거리에서 진 거다. 할아버지들의 시대, 그건 종편 평균 시청률 0.5%에 갇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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