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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 동안 매주 ‘몇어찌’를 연재하면서 어쩌면 나는 이 순간만을 계속해서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마도 신문 지면에 쓰는 나의 마지막 칼럼일 것이다. 2005년 서울신문에 첫 칼럼을 쓴 이후 참 많이도 썼다. 모든 시작하는 것은 끝이 있다고, 경제학자로서 신문에 쓰는 고정칼럼은 이제 접으려고 한다. 학자 혼자서 해볼 수 있는 실험으로는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지만, 혼자 하는 걸로는 더 연구를 끌어갈 형편이 되지 않는다. 준비 중인 몇 권의 책을 끝으로 경제학자로서의 내 삶은 접을 준비를 하는 중이다. 억지로, 참 오래 끌고 왔다. 그러나 이제 그만 손에서 내려놓으려고 한다.

마지막 신문 칼럼의 모티브는 이제 곧 개봉할 영화에서 따올까 한다. 한국 경제는 지난 10년간 ‘꽃마차’ 이론이 주류를 형성했다. 너도 잘하면 꽃마차를 타고 갈 수 있어, 하늘이 무너져도 너만 잘하면 되는 거야… 이런 얘기를 한 때는 ‘긍정적 마인드’라고 부르기도 했고, ‘자기계발’이라고 부르기도 했고, 요즘은 ‘위로’라고 부르는 것 같다. 얘기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거대한 신데렐라 스토리가 경제학 행세한 나라였다.

그 속을 ‘까’보면, 부동산 투기꾼들의 거품 부풀리기 아니면 증권으로 개인들의 주머니를 털어먹기, 아니면 엄마의 정보력과 할아버지의 재력을 결합한 사교육 신드롬, 뭐 그런 거 아니겠는가?

그런 우리에게 ‘화차’(火車’)라는 낯선 이름이 갑자기 등장했다. 불 수레, 악인을 지옥으로 끌고 갈 때 쓰는 수레의 이름이다. 기다리던 꽃마차는 오지 않고 갑자기 지옥행 특급열차라니! 그게 변영주 감독이 갑자기 우리에게 펼쳐 보여준, 우리를 기다리는 복합불황 형태의 장기공황에 놓이게 된 우리의 모습이다. 누군가를 죽이고, 그 이름을 차용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삶! 그걸 드러내서 보여준 게 일본 문학이고, 여전히 기다리면 꽃마차가 온다고 얘기하는 게 지금의 한국 문학이라면, 너무 잔인한 비유일까? 

영화 '화차'

 

신용불량자, 카드연체 추심, 가족 연대보증을 통한 몰락, 사실 우리가 애써 외면했지만 이미 우리 코앞에 화차는 도착했다. 여당은 물론 야당마저도 모피아, 교육 마피아, 토건족들에게 완벽하게 장악된 나라, 국민은 보호받지 못한다. 꽃마차 대신 화차가 기다리는 현실, 필연일 수밖에 없다. 학자금 대출 빚과 함께 졸업하는 대학생, 그게 바로 우리가 타 있는 화차의 경제이다.

좋은 것을 보고 긍정적으로 사유하라, 그리고 위로를 구하라! 지금 그렇게 한국에서 얘기하는 자가 바로 화차의 마부이며, 메피스토텔레스의 조력자이며, 자력구제 대마왕이다. 그런 식으로 한국 경제에 꽃마차는 오지 않는다. 기다리는 것은 화차일 뿐이다. 대선, 이길 수 있다. 그리고 새로운 정권을 ‘시민의 정부’라고 이름 붙일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시민의 경제’는 오지 않는다. 대통령 한 명 바꾼다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너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자, 시민의 경제란 무엇일까, 그것은 어떤 모습일까? 국가가 주도하는 경제의 모습은 알고 있다. 시장이 주도한다고 말하고 사실은 건설을 주축으로 한 대기업들이 과실을 다 챙겨 가버린 경제의 모습도 알고 있다. 

‘시민의 경제’, 이건 경제학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고 한국 대학에서는 절대 가르치지 않는 내용이다. 어렴풋이 북유럽 등 유럽의 일부, 일본의 지역 경제, 이런 곳에서 시민의 경제가 펼쳐지고 있다는 ‘전설 같은’ 얘기만이 전해질 뿐이다. 우리가 가보지 않은 일이고 상상도 못해본 일이다.

물론 우리도 생활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과 같은 것들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마치 한국의 시민들이 촛불 이후에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것처럼, 시민이 경제적 주체로서 국민경제에 개입한다는 것을 아직 제대로 상상해본 적이 없다.

이제부터 펼쳐보여야 할 세상에 관한 얘기이다. 꽃마차를 기다리다 화차를 만난 국민들, 그들이 선택할 세상에 관한 이야기이다. 과연 동료를 찌르고 짓밟으면서 결국 화차를 타고 갈 것인가, 아니면 꽃마차를 포기하고 인간으로서의 삶과 상식을 회복할 것인가, 그 집단적 선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경제를 결정한다. 

우리는 국민을 소비자로만 보거나, 홍보의 대상으로만 본다. 그러나 시민으로서의 경제 주체, 그것에 관한 생각은 한번도 진지하게 해보지 못한 것 아닌가? 시민의 정부는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시민의 경제는 그냥 생기지 않는다. 꽃마차와 화차 사이의 개인의 선택, 그것이 경제주체로서의 시민의 탄생을 만들어낸다. 결국 한 명, 한 명이 선택하는 것이다. 선택은 자유이지만 결과는 논리적이며 필연적이다.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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