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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에는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가 엄청나지만 신호나 횡단보도는 적습니다. 걸 건너편으로 가려고 해도 건너지 못해서 안절부절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스리랑카는 교통법규도 인프라 정비도 정말 엉망진창”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에 비하면 일본은 전국에 설치된 신호기의 수가 20만개 이상이고, 도로교통법은 어떤 선진국보다 잘 규정하고 있습니다.

두 나라 중에서 자율주행이나 차량 공유 서비스 등 최첨단 기술이나 서비스를 도입하는 시점에 어느 쪽이 새로운 시대로 신속하게 옮겨갈 수 있을까요? 일본의 저널리스트인 나카야마 아쓰시는 <2019 앞으로의 일본의 논점>(일본경제신문출판사)에 실린 “인공지능(AI)이 바꾼 경영, ‘결과에서 역산’하여 찾은 활로”에서 스리랑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율주행은 ‘결과지향’ 성격의 기술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대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까지 가장 빨리 도착하게 해줘’라고 자율주행차에 지시하면, 명령을 충실하게 실현하고자 자동차의 AI는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와 최단 코스를 선택해 달린다. 그러한 주행 방식은 신호나 교통법규의 수가 적은 스리랑카가 주행 시 제약이나 장애가 적고 자율주행차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 일본보다 유리하다. 요컨대 ‘결과에서 역산’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과거부터 축적되어 온 규칙이나 산업은 적은 편이 좋다.”

AI 기술은 일취월장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통한 얼굴 인식이나 음성명령, 그리고 상품 추천 시스템 등이 AI 기술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제 보편적인 상식입니다. “스마트폰에다 음성으로 음악을 탐색하고, 날씨를 묻고, 카카오톡을 보내고, 택시를 부르는” 일도 AI 기술 때문에 가능합니다. <카카오 AI 리포트>(북바이북)는 AI 기술이 우리의 일상생활에 지금 어디까지 침투했는지를 확인시켜줍니다.

전문가들은 2019년에 AI 실용화의 길이 본격적으로 열릴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습니다. 나카야마는 “우리가 스피커나 가정용 로봇, 가전 등을 통해 매력을 아주 약간 맛보았지만, AI가 제힘을 발휘하는 분야는 컨설팅이나 자율주행 같은 비즈니스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일본 기업의 경영 방식도 큰 변화를 맞을 가능성이 있다”며 지금이 매우 중요한 때라는 사실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는 소프트웨어나 애플리케이션, 클라우드 등으로 이익을 얻는 미국의 가파(GAFA, 구글·아마존닷컴·페이스북·애플)가 지금 세계 경제를 주도하고 있지만 GAFA에 ‘결과에서 역산해 수익을 내는’ 경영이 자리 잡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구글은 AI 기술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은 일부에 지나지 않고, 주력 사업은 여전히 광고다. 결과에서 수익을 내는 회사라기보다 정보 매칭으로 돈을 버는 과거 비즈니스 모델의 기업이라고 봐도 좋다. 결국 승부는 이제부터라는 얘기다. 일본에도 기회가 있다. 하드웨어에 강하다는 말은 자동차, 철도, 인프라 설비, 산업기계, 의료기기 등 제품과 거기에서 빅데이터를 얻는 사업의 매칭이 풍부하게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역산해서 수익을 낼 기회는 GAFA와 같거나 그 이상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일본 기업은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조직(집단)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과정만을 열심히 생각해도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나카야마는 “AI는 원래 목적지향, 결과지향의 기술이다. 명확한 목적이나 결과가 주어질 때라야 비로소 제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야노 가즈오 히타치 선임연구원(AI 연구를 총괄하는 행복프로젝트 리더)의 말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나카야마는 개인 차원에서도 같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합니다. 앞으로 “기술의 진보가 한층 가속하여, 인간은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고, 동료뿐만 아니라 기계와도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릴 수밖에 없습니다. 또 “개개인이 하고 싶은 일이나 바라는 일을 설정하면 최선의 조언을 AI가 도출하여 성공 확률을 비약적으로 높”이는 일이 가능한 시대를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방대한 데이터를 가진 AI는 개인에게 알맞은 해답을 산출해서 곧바로 스마트폰으로 적절한 조언을 전송해줄 테니까요.

기술적으로 낙후된 나라가 기술혁명으로 단기간에 한 단계를 뛰어넘어 성장하는 것을 ‘립프로그(leapfrog, 개구리 점프)’ 현상이라고 부릅니다. 기술을 ‘가지지 못한 나라’는 규제가 적고 중간 과정을 쉽게 뛰어넘을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노키아를 배출한 핀란드는 강설과 추위, 그리고 인구밀도가 낮아 일반전화의 인프라 정비를 해나가기가 어려웠기에 모바일 네트워크 분야에서 다른 선진국을 앞지를 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광섬유망 부설에서 선두를 달리던 일본은 일반전화라는 자산에 얽매여, 모바일 통신에서 뒤처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AI의 ‘립프로그’가 가능할까요? 최근에 인터넷전문은행, 공유택시 등을 도입하려고 했을 때 기존 업계의 반발이 거셌던 것처럼 AI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도약이 쉽지 않았습니다. 나카야마는 “AI 기술로 세계적 리더로 군림하고 싶다면 일본의 법이나 규제의 체계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한 국민적 논의가 필요하다. 2019년은 그야말로 운명의 갈림길에 놓여 선택을 요구받는 해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라고 다를까요? 중대한 기로에 선 우리도 반드시 현명한 선택을 해내야만 할 것입니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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