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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바로 여기, 한국의 법 테두리 안에서 채용비리를 저지른 국회의원은 무죄, 그의 채용비리 의혹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청년 활동가는 유죄를 받는다.
2013년 중소기업진흥공단 공채가 있었다. 36명의 신입사원을 뽑는 시험에 4500여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공공기관이 꿈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시대에 125 대 1이란 경쟁률은 놀랄 일도 아니지만 2299등을 하던 황모씨가 합격 발표 전날 36등으로 순위가 조정되어 합격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충분히 놀라울 만했다.
결국 꼬리가 밟혔다. 황씨의 점수를 무리하게 조정하고 외부위원의 반발에도 최종 합격시킨 정황이 드러났다. 법정에서 모르쇠로 일관하던 중진공 박철규 전 이사장은 최경환 의원의 채용 청탁이 사실임을 진술했다. 최종 합격 발표 전날 최 의원과의 독대에서 ‘황씨는 불합격 처리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에도 최 의원은 ‘내가 결혼도 시킨 아이인데 그냥 채용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다.
공공기관 채용비리 사건이 불거지면서 박 전 이사장을 비롯한 인사 담당자들은 일찌감치 징역 10월을 선고받았지만, 정작 채용을 청탁한 최 의원은 10월5일에 치루어진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꼬리자르기식 판결이었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이 공천작업을 하던 2월. 청년 시민단체는 청년을 투표하는 기계가 아니라 유권자로 본다면 채용비리를 저지른 인사에게 공천을 주지 않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청년유니온 김민수 전 위원장은 중진공 채용비리에 연루된 최경환 의원의 공천 반대 1인 시위를 40분간 진행했다. 그러자 최 의원을 공천하지 않겠다고 자유한국당이 응답한 게 아니라, 선거법 위반이니 재판을 받으라는 선관위의 통보가 날라왔다.
이어진 판결도 납득할 수 없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과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음에도 대법원은 유죄 취지로 서울고법에 파기환송했다. 이어 파기환송심은 ‘선거운동과 관련한 것은 아니지만 유권자의 공정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저해할 수 있다’며 선거권 5년 박탈과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고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선거운동은 아니지만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모순이 만들어낸 유죄였다.
그렇다면 유권자는 선거기간에 어떻게 의견을 표현하고 나눌 수 있을까. 유권자의 공정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저해하는 선거운동은 금권(金權)이지 언권(言權)이 아니다. 앞선 최 의원에 대한 무죄 판결은 고위공직자가 처벌받지 않을 수 있는 무소불위 권력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고, 뒤이은 김 전 위원장에 대한 유죄 판결은 이러한 권력에 반발하는 청년 활동가와 시민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관용구를 좋아했다. 세상 논리에 명확히 맞아떨어지지 않는 문장 사이도 극적으로 연결해주고, 어떤 역경과 고난에도 끝내 이루어내고 말았다는 결말의 도입부가 되어주어서다. 즉, 기대한 결말이 아니더라도 그 결과에 불복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관용구이다. 그러나 이번만은 달랐다. 채용비리를 저지른 최경환 의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죄를 받았고 청년 유권자의 권리를 이야기한 김민수 전 위원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죄를 받았다. 사회 변혁의 힘이 무뎌진 곳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이렇게 쓰이고 만다.
<민선영 | 청년참여연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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