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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에 ‘본데’라는 말이 있습니다. 보고 배운 예의범절이나 솜씨, 지식 등을 뜻합니다. 젊거나 어린 사람이 경우 바르거나 눈썰미 좋고 재바르면 ‘본데있다’ 하고, 망종되거나 허수로우면 ‘본데없다’ 하여 그 사람의 보임새로 집안의 윗길 아랫길을 알아봅니다. 얼마 전 모 종편방송사 대표이사의 어린 딸이 자기네 운전기사에게 퍼부은 폭언과 욕설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습니다. 고작 열 살짜리 초등학생이 어른 뺨치는 그악스러운 언행을 해댔기에 자식 둔 사람이건 아니건 말세라는 탄식으로 도리질할 수밖에 없었지요.

어린 딸의 오만방자가 논란이 되자 그 아비는 대표이사직을 사임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집안을 앞으로도 오래오래 저 아랫길로 치겠지요. 그 아이의 본데가 무엇일지 다들 빤히 아니까요. 평소 그 아이의 엄마가 사택 기사를 어떤 얼굴과 목소리로 부렸는지 아이는 똑바로(?) 보고 배웠을 것입니다. 그 엄마는 남편이나 친정 식구들이 아랫사람들에게 대하던 태도를 보았을 거고요. 그런 아빠 엄마를 보고 배웠으니 아랫사람은 저 아랫것이라는, 있는 집 자식의 거만과 건방으로 자라지 않았을까요? 아무렴 본데없이 혼자 그리 컸을라고요.

속담에 ‘굽은 지팡이 그림자도 굽어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팡이가 굽어 올곧지 못한데 그 그림자가 맷맷하게 쭉 곧을 리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지팡이는 집안의 큰어른을 뜻합니다. 조부모의 꼬부랑 행실은 어디 안 가고 그 자식과 어린 조손에게까지 굽은 그림자로 길게 드리운다는 것이지요. 맹랑함을 넘어 모질고 사나운 태도까지 보인 그 어린 조손의 본데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그림자는 지팡이의 맨드리를 어림치게 하는데, 어린 조손에게 뱀 같은 그림자를 드리웠던 굽은 지팡이는 뭐였을까요? 저기 신문더미에 기대 드리운 저 굴곡진 그림자의 실체였을까요?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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